죽창과 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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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모도 아닌 거시 풀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언는다/ 뎌러코 사시(四時)예 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

고산 윤선도(1587~1671)는 56세때 전남 해남에 은거할 무렵에 지은 ‘산중신곡(山中新曲)’속에 6수의 시조 ‘오우가(五友歌)’를 남겼다.

수(水), 석(石), 송(松), 죽(竹), 월(月)을 다섯 벗으로 삼은 고산의 대표적인 시조.

이들 다섯 벗 중 대나무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게 사계절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처럼 곧은 성품으로 대표되는 대나무가 최근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렸다.

지난 16일 오후 대전시 동부경찰서 앞 도로. 화물연대 집회를 마친 참가자와 경찰이 대치하면서 대나무 만장 1000여 개가 전면에 나섰다.

시위대가 대나무를 땅바닥에 내리치자 수십 갈래의 살로 찢어지고, 공격을 피하지 못한 경찰은 속수무책으로 얼굴에 찔리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시위를 주도한 민주노총과 화물연대측은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만장 제작용 대나무를 우발적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시위 직후 이 대나무가 죽창이냐, 죽봉(대나무 막대기)이냐를 놓고 제각기 입맛에 따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시위 직후 경찰은 대나무 끝의 살이 죽창처럼 날카로웠다는 이유로 ‘죽창’으로 규정했지만 18일 검찰은 날을 세운 것이 아니므로 ‘죽봉’으로 표현했다.

▲‘죽창’의 정확한 표현은 ‘죽장창’(竹杖槍)이다.

조선시대에 무예를 연습할 때 사용한 무기인 죽장창의 제원은 전체 길이가 4m이며 날의 길이는 8㎝.

통대로 만들어 자루 끝에 날을 물리거나, 대쪽을 깎아 부레풀로 붙인 다음 실을 감는 죽장창은 십팔기무예의 하나이기도 하다.

죽세공품에서부터 관상용, 죽순요리 등 다양하게 이용되는 대나무가 만장 제작용에서 죽창으로, 다시 죽봉으로 불리며 수난을 받고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소통부재의 시대.

사람들 사이에 막혔던 소통의 문을 열어 젖힐 ‘탁, 탁, 탁’ 죽비소리의 위엄을 찾을 날은 언제면 올지.

<김홍철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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