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 김범훈 기자
  • 승인 200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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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에 새겨 고인을 기리는 명문(銘文)이나 시문(詩文)이 곧 묘비명(墓碑銘)이다.

묘비명은 통상 후대가 바치거나 생전에 고인의 글과 말에서 뽑는다.

그러나 고인 스스로가 미리 정해놓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오래 전에 다음과 같은 세 줄의 묘비명을 들은 바 있다.

그 첫째 줄은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소.”였다.

그리고 둘째 줄은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곳에 서서 그렇게 웃고 있었소.”였다.

그러나 마지막 셋째 줄은 “이제 당신도 나처럼 죽을 준비나 하시오.”였다.

불특정 다수에게 지금 이 순간부터 아름다운 삶을 살라는 위트가 번뜩인다.

▲묘비명은 16세기 유럽에서 ‘에피그램(碑詩)’이라는 서양문학의 한 장르로 발전했다.

그 후 명사들의 삶과 가치관이 또렷이 담긴 숱한 비명(碑銘)들이 많이 지어졌다.

‘적과흑’으로 유명한 소설가 스탕달은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라는 묘비명을 직접 썼다. ‘희랍인 조르바’의 작가인 니코스 카잔스키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라며 자유를 향한 뜨거운 갈망을 드러냈다.

또 ‘노인과 바다’의 작가 훼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 미안 하오”라는 명문을 남겼다.

그러나 병든 사람을 위해 평생 헌신의 삶을 살아온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의 묘비명은 “F.N. 1820년 태어나 1910년 죽다.”가 전부다. 한 없이 겸손했던 그녀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29일 먼 길을 돌아 산 자들과 영결(永訣)하고 귀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은 아직 누울 땅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단 열네 줄의 유서를 남긴 고인은 장례에 관해 “화장하라.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며 세 마디로 짧게 당부했다.

산 자들인 ‘수백만 국민들의 눈물’과 고인의 ‘아주 작은 비석’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마도 묘비명엔 이런 뜻과 고인의 삶이 응축될 것 같다.

언뜻 유머감각이 탁월했던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오른다.

그는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묘비에 적었다.

현 정부가 곱씹어봐야 할 명문이다.

왜냐하면 이 정권 출범부터 따라다닌 권력의 편중과 탈선으로 인해 밑바닥 민심들은 서서히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탄식하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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