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애창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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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와 가곡은 대체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평화로운 시절에는 주로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곡조의 가요가 많이 불린다. 6.25 한국전쟁이 잊혀질 만한 1960년대 이후의 가요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6.25 직후인 1950년대에는 전쟁과 전우와 슬픔을 주제로 한 곡들이 주류를 이뤘다. 전후(戰後) 세대들이 많이 불렀던 가요 가운데 전선야곡, 전우가 등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으로 시작되는 전선야곡과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화랑담배 연기속에 사라진 전우야’로 끝나는 전우가 등은 모두 1950년대 군인은 물론 국민 애창곡들이었다.

특히 전우가는 당시 초등학생들도 조회시간마다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전쟁 직후여서 동요가 덜 보급된 탓도 있지만, 그만큼 전쟁의 상처가 너무 컸고 또 북진통일에의 염원이 남아 있던 시대상과도 무관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모두 열살 전후였던 어린 시절이라 전쟁의 깊은 상흔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그저 신이 나서 불렀을 뿐이다. 물론 동족상잔의 비극이 얼마나 처참했었는지는 교과서와 선생님과 어른들의 입을 통해 실감하게 됐지만, 1967년에 나온 가곡 비목(碑木;장일남 작곡.한명희 작사)은 잊을 만한 6.25의 아픔과 처절함을 또 다시 새롭게 각인시켜준 노래였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이름 모를 비목이여-’. 구슬픈 곡조와 가사 모두 6.25의 비극을 한마디로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비목은 작곡자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철원 부근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숱하게 널려진 시체들과 이름 없는 비목을 보았던 기억을 살려 만든 곡으로 알려지고 있다.

너무나 처참했던 당시의 전쟁터를 떠올리게 하고,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애절한 가곡이다. 특히 비목이 전하는 적막감과 고독.우수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은 6.25 발발 53년이 되는 날이다. 이제는 거친 비바람이 비목마저 제자리에 놓아두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친 이름 없는 비목의 영령들을 생각해 봄이 좋을 듯싶다.

비무장지대 손길이 닿지 않는 비목 아래 묻힌 수많은 젊은 넋들을 기리고, 자유와 평화와 나라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오늘 하루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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