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병에 대하여는 전사에도 기록되지 않았고,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학생의 신분으로 참전하였기에 학도병이고, 그 중에서 17세 이하의 어린이기에 소년병입니다.”
6·25 참전소년병들의 “어린 나이에 총을 들고 싸웠던” 생생한 수기, <우리들의 아름다운 날을 위하여>의 서문이다.
▲한 소년병은 첫 전투에 투입됐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썼다.
“북괴군의 포탄이 우리 진지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살점이 하늘을 나르고 피가 땅으로 튀었다. 사방에서 “아이고!”, “어머니”하는 단말마같은 비명이 천지를 진동했다. 16세의 어린 나는 어쩔 줄 모르고 헤매다가 호속으로 나뒹굴어졌다.”
이제 70대 후반에 이른 생존 소년병들의 수기를 보며, 우리가 지금 이만한 나라에서 이렇게 사는 것이 누구의 피와 희생위에 서 있는 것인가를 생각한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주의 젊은이들이 해병대에 입대해 인천상륙의 선봉이 되고 서울을 탈환한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가 17세 미만의 소년병들이었다는 사실은 묻혀 있다.
2007년 제주일보 보훈대상 상이군경부문 수상자인 부창옥씨(해병 4기, 17세 입대)와 2009년 수상자인 김동준씨(해병 4기,17세 입대) 등의 이야기를 통해 제주 소년병의 실태가 일부 밝혀지고 있다.
▲제주에 온 군 모병관들은 18세 이상이라는 규정은 아예 무시하고 무조건 ‘지레(키)’ 순으로 뽑았다. 그래서 최소한 M1 소총을 들 수 있는 아이들이 징집돼 일주일 교육에 다섯 발 사격훈련을 하고 인천에 상륙했다.
중학교, 교원양성소 등에 다니던 어린 학생들이 상당수였다. 많은 이들이 전사했다.
살아남은 소년병들은 전쟁이 끝났어도 평균 2년을 더 복무한 후 고향에 돌아왔다.
그러나 면학의 황금기를 잃어버린 소년병들은 평생 동안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 아름다웠던 미소년들이 이제는 백발이다.
6월을 보내며 6·25소년병들의 눈물을 생각한다.
우리는 이들에게 어떤 예우를 하고 있나.
<부영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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