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 ‘풍년기근’ 사전에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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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기근(豊年飢饉·풍작기근)이란 풍년이 들었으나 농산물의 가격이 너무 떨어져 농민에게 타격이 심한 현상을 말한다. 즉 풍작을 거둬 농산물의 수확량이 늘어나면 당연히 농업소득도 증가해야 하는데 현상은 정반대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이 증가해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소비가 그에 따라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폭락하고, 따라서 증가한 수확량에 비해 가격 하락폭이 더욱 커서 소득이 감소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농산물가격은 생산비와 상관없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소비자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농산물이 부족하면 안되지만 남아돌아도 효용가치가 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농업인들이 정성과 수고를 쏟아부은 노력의 결정체인 농산물가격이 경영비를 훨씬 밑도는 수준으로 폭락해 애써 가꾼 농산물을 산지폐기한다면 농심(農心)은 폐기되는 농산물만큼이나 쓰라릴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풍년기근시 산지폐기를 않고 생산자인 농업인에게 어느 정도의 이익을 안겨다 주는 전략은 없는 것일까. 이런 점에서 전국 최초로 제주에서 시도된 양배추 매취사업은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사실 2008년산 제주 양배추는 우울한 풍년을 맞았었다. 재배면적이 늘고, 날씨가 좋았던 탓에 양배추가 과잉 생산된 것이다. 많은 양이 산지폐기될 찰나 제주특별자치도와 한림농협이 매취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해 수십억원의 적자를 면키 어렵다는 일부의 예상을 뒤엎고 8억여 원의 이익을 내며 성공신화를 썼다.

인건비는 커녕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고 아예 수확을 포기한 채 갈아엎어야 될 상황에서 재배농가들이 예상 수취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받으며 우려됐던 소득손실을 대폭 축소시켜 우리에게 제주 농산물의 향후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취사업은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매취사업은 농가들로부터 수집한 농산물을 자체 비용을 들여 구입한 뒤 시장에 되파는 사업방식이다. 주로 농산물이 과잉 생산돼 가격이 하락했을 때 농협이 농산물을 적정가격에 구입해 시장에서 요구하는 만큼만 공급해 가격을 유지한다.

농가에게는 안정된 소득을 미리 보장해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업 주체에게는 판매 손익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으로 많은 농협들이 참여에 소극적이었다. 농업인들이 이익을 보는 것과 비례해 위험도가 커 실패하면 손해는 고스란히 농협의 빚으로 남고 조합장의 짐이 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림농협이 매취사업에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것은 농협의 존재이유를 더욱 확고히 해주며 매취사업이 기본적이고 지속적인 농협의 경제사업으로 시행돼야 한다는 당위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물론 이번 양배추 매취사업은 ▲매취사업 기대심리에 따른 과잉생산과 가격폭락의 악순환 초래 가능성 ▲풍작기근에도 생산비 이상의 소득 보장으로 일부 농가의 ‘도덕불감증’ 우려 ▲행정기관의 지나친 개입과 구입물량 강제할당 논란 등 개선점도 없지 않다.

농산물 가격 안정과 농가소득 지지를 위해 매취사업만이 유일한 대안일 수는 없다. 따라서 매취사업이 제주농업의 새로운 활로로 주목받으면서 농협의 주요 경제사업으로 자리잡더라도 사후적 성격이 강하기에 생산자단체와 농업인, 행정당국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 수급동향에 따른 생산량 조정 등 사전(事前)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올해 제주 제1의 소득작목인 노지감귤 생산예상량은 65만9000t으로 적정 수준인 58만t을 7만9000t 초과하는 풍년기근이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직 감귤농가들에게 풍년기근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있다. 그것은 바로 7만9000t 감산을 위한 감귤 안정생산 직불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고경업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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