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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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미간(眉間)이 넓으면 부귀한 상으로 예언 받았다.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는 미간의 중심인 인상(印常)이 넓을수록 좋은 점수를 주어서 혼기에 찬 여인들은 미간에 난 털을 뽑는 것이 은밀한 미용술이었다.

이런 미용술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았다. 중국 조(趙)나라 때는 여인들이 눈썹을 뽑아 넓은 미간을 만드는 일이 유행했고 수(隨)나라 양제(煬帝)의 애비(愛妃)였던 오강선(吳絳仙)의 눈썹을 아미라 하여 수나라 여인들이 눈썹털을 뽑았던 일들이 전해진다.

중세 유럽에서도 미녀의 조건으로 무지개형의 가는 눈썹이 유행했는데 아미가 아닌 여인은 미녀가 될 수 없었다.

▲예뻐지기 위한 눈썹의 변형문화는 이처럼 역사와 전통이 있다.

우리나라 관상에서 눈썹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눈썹의 머리와 꼬리에서 눈썹털이 서 있으면 대전(帶箭.화살)이라 하여 이를 뽑아내지 않으면 집이 파산하고 관액(官厄)과 비방을 받게 된다고 했다.

또 눈썹털이 회오리친 여인들은 절개가 없고 부정(不淨)하다고 했다.

이런 눈썹을 보는 관상법인 미상(眉相)이 50여 가지가 넘는다.

그러니 이 미상에 맞추어 눈썹을 뽑고 심고 칠하고 긋고 하는 그런 미용술이 자연히 발달해왔다.

▲우리 민요에도 눈썹이 나온다.

‘비야 비야 오지 마라, 우리 엄마 빨래 걱정, 우리 아빠 물꼬 걱정, 우리 누나 눈썹 걱정.’

비가 내리면 누나가 정성들여 그려논 눈썹이 지워질까 걱정한다는 내용이다.

옛날에 서민들은 눈썹을 보리깜부기로 그렸다. 그러니 비가 와서 얼굴이 젖으면 눈썹을 그린 보리깜부기가 검댕이 물이 되어 얼굴에 흘러 내렸다.

그 시절이 잘 그렸던 눈썹의 스타일은 눈썹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넓어지게 하고 똑같은 두께로 나가다가 끝이 늘어지는 버들형(柳型) 등 수십 가지가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느다랗게 무지개형으로 굽은 아미형(蛾眉型)이 가장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최근 제주시내에서는 피부에 색소를 주입해 눈썹의 윤곽을 뚜렷하게 해주는 문신화장술이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눈썹과 속눈썹을 그리는 문신 화장을 10만원 정도 받고 시술해주는 무허가 업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전문의사들은 피부와 신경조직이 손상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보리깜부기로 눈썹을 그렸던 그 시절에서 우리 여성들의 눈썹그리기가 이렇게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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