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힘을 키우는 페르미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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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석·제주대 교수·경영정보학과·논설위원>

세계에서 하루 동안 소비되는 피자는 몇 판일까? 태평양의 물은 몇 리터일까? 우리나라의 전봇대는 모두 몇 개나 될까? 지구 밖 은하계에서 생명체를 만날 확률은 얼마일까? 모두 단번에 대답하기 어렵고 황당하기까지 한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추정논법을 사용해 단시간에 대략적인 답을 생각해내는 방법을 ‘페르미 추정’이라고 한다. 페르미 추정은 원자력의 아버지로 불리며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엔리코 페르미(1901년∼1954년)가 물리량 추정에 뛰어났고, 그가 학생들에게 독특한 문제를 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페르미는 시카고 대학 물리학 수업의 학생들에게 황당한 질문을 자주했다. 그 중 하나가 “시카고에 피아노 조율사는 몇 명 있을까?”였다. 단순 암기법에 익숙한 학생들이나 피아노를 못 치는 학생들은 문제풀기를 아예 포기했다. 페르미가 강조한 것은 제한된 시간과 부족한 자료 속에서도 생각의 힘만으로 알아내는 것이었다. 페르미 추정과정은 다음과 같다.

시카고에 약 300만명이 살고 1가구는 평균 3명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시카고에는 100만가구가 산다. 피아노 보유율을 10%로 잡으면 10만 가구가 피아노를 갖는다. 1가구당 1대의 피아노를 보유하면 10만대의 피아노가 있다. 피아노 조율을 1년에 1번 하는 것으로 가정한다.

이제 문제 해결을 위해 남은 것은 피아노 조율사의 하루 동안 조율 회수이다. 이동시간을 포함해 조율사가 피아노 한 대를 조율하는 데는 2시간이 걸린다고 하자. 하루 8시간 일하는 조율사는 하루 4대의 피아노를 조율한다. 조율사가 주 5일 근무하고 1년에 50주 동안 일한다고 생각하면, 4대×5일×50주가 되어 조율사가 1년 동안 조율하는 피아노는 1000대이다. 결국 시카고에는 100명의 피아노 조율사가 있다.

페르미 추정은 어림셈을 근처에 있는 봉투 뒷면에 간단히 계산해 본다는 뜻에서 ‘봉투 뒷면 계산’이라고도 불린다. 페르미 추정은 본격적으로 정확한 수치를 구하기보다는 대략적인 자릿수를 산출하는 데 무게를 더 둔다. 페르미 문제는 출제자 자신도 정답을 모른다. 해답이 없다. 페르미 문제에서 페르미가 강조했던 것은 생각의 힘만으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이런 교육효과로 페르미는 6대의 사제관계에 걸쳐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현재 페르미 문제는 생각의 힘이 강한 인재를 뽑으려는 기업의 신입사원 면접과 교육기관의 영재선발 문제에 자주 쓰인다. 각국의 정상들을 한 자리에 모아 회의를 개최했을 때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계산하거나, 대형 스포츠 대회를 유치했을 때 생기는 경제효과를 산출할 때에도 페르미 추정이 사용된다.

페르미 추정은 자료가 부족하고, 불확실성이 높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특히 유용하다.

우리나라 개 사료의 1년 매출액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 전체인구는 4800만 명이고, 한 가구당 인구수를 3명으로 잡으면 1600만 가구가 있다. 10가구 중 1가구에 개가 있다고 가정한다. 160만 마리의 개가 하루에 3끼를 먹고 한 끼니에 0.2㎏을 먹는다고 하자. 우리나라의 개가 1년간 먹는 사료의 양은 160만 마리×6㎏×365일로서 약 3억5000㎏이다. 개 사료 1㎏당 1000 원이라 가정하면 3500억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보조 자료를 활용해 보다 정확한 수치를 대입하면 보다 정확한 추정이 가능하다.

완벽한 답을 구하느라 가만히 있는 것보다 어느 정도 어림을 잡은 후에 치밀한 계산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문제해결자는 페르미 추정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된다. 단절의 시대에 페르미 추정의 적용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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