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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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공포와 이익’을 통치원칙으로 삼았다. 적의 위협을 받고 있는 정부는 가혹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역사가들이 그를 혹평하는 논거이기도 하다.

흔히 ‘나폴레옹’ 하면 지능이 뛰어난 사람으로 통한다. 프랑스 혁명사의 권위자인 조르주 르페브르 역시 “나폴레옹의 두뇌는 존재하는 것 중 가장 완전한 것의 하나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나폴레옹은 잇단 전쟁과 군사 독재로 프랑스 국민들의 삶을 지치게 만들었지만 문화발전정책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프랑스 국민들이 지금도 그를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폴레옹이 있었기에 오늘날 문화국민의 자부심을 누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독재자로서는 마땅히 단죄(斷罪)돼야 하나, 군인으로서 탁월한 전략과 문화창달에 기여한 개인적 면면이 그를 영웅의 위치에 올려 놓게 했는지 모른다. 오늘의 프랑스, 특히 파리는 나폴레옹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체취가 묻어 있다. 당시 도시계획에 의해 뚫린 도로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고, 미적 감각을 살려 지은 건물들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도심 넓은 도로망은 물론 현대식 건물에 견주어 손색이 없는 주거형태 등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작품들이다. 도시 건물 페인트 색깔까지 파리시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도시미관정책 역시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나폴레옹이 집권하면서 제일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대문호 괴테였다. 평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즐겨 읽었던 나폴레옹은 그를 보자마자 벅찬 감격을 억누르지 못해 함성을 질렀다고 한다.

아마도 역대 각국 통치자들 중 문화예술인들을 가장 우대했던 사람 역시 나폴레옹이었을 것이다. 그는 공식 만찬 때면 으레 장관들보다 학술원 회원들을 상석(上席)에 앉힌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대관식’과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등 그를 대상으로 한 다비드의 그림이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특히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한때 세계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기도 했다.

‘나폴레옹과 (그의 아내) 조세핀’ 전시회가 10일부터 서울에서 열린다고 한다. 진취와 기상과 문화의 표상이 돼온 나폴레옹의 모습을 접하는 기회가 제주에서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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