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戰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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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지 않은 지난 시대에 시인인 동시에 전사(戰士)였던 작고 시인 김남주(1945~1994년)가 있었다. 박정희가 심복의 손에 쓰러지기 불과 보름 전 남민전 사건에 연류돼 15년형을 선고받은 김남주는 대부분 시를 감옥에서 썼다.

그는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꽃이 되자 하네 꽃이/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녹두꽃이 되자 하네…(중략)…다시 한 번 이 고을은/반란이 되자 하네/청송녹죽 가슴으로 꽂히는/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노래’)라며 1980년대 정권의 야만성에 저항했다.

한국 현대시사에서 그는 외세에 대한 거부와 부자들을 향한 증오, 독재권력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전사(戰士)로 우뚝 서며 선명한 메시지와 강렬한 톤으로 시를 쓴 시인이었다. 김남주. 강철 같은 전사(戰士)로 기억되는 그지만 마음 속 깊은 감성의 가느다란 실을 끄집어내는 섬세한 시인이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서 그는/조용한 사람이었다/이름 빛내지 않았고 모양 꾸며/얼굴 내밀지도 않았다”(‘전사1’)던 시인은 갔지만 그의 시는 노래로, 혹은 육성으로 남아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최근 전국 검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화제다. 강 장관은 이 메일에서 김수영(1921~1968년)의 시 ‘더러운 향로’(1954년 발표)에 나오는 전사(戰士)를 검사에 비유해 눈길을 끌었다. “길이 끝이 나기 전에는/나의 그림자를 보이지 않으리/적진을 돌격하는 전사와 같이/나무에서 떨어진 새와 같이/적에게나 벗에게나 땅에게나/그리고 모든 것에서부터/나를 감추리.”

강 장관은 “이 시에서 전사의 영혼은 순결함을 표상한다”며 “검사라는 직업은 순결성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회적 실존형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적었다. 나아가 검사를 “순수성을 지닌 눈사람”이라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여러분의 순결성을 지켜주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자주 비판의 도마에 오르내렸던 검찰을 향한 강 장관의 또 다른 성찰이다.
가까운 DJ 정권 시절, 신임 법무부 장관이 취임사 전에 배포한 자료에서 “대통령 성은에 감사”, “정권 재창출에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시대착오적 망발도 있었음을 생각해보면 강 장관의 이번 메일은 눈사람 같은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정치검찰, 항명 등 그동안의 오욕을 한꺼번에 묻어버릴 눈사람 말이다.

행동하는 전사(戰士)의 순수한 양심은 시대는 갔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메일에서 “같이 합심해 그릇됨과 다투자”고 제안한 강 장관의 일성이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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