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의 ‘발가벗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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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이나 자서전, 회고록은 저자가 알몸으로 발가벗으면 벗을수록 값어치가 있다. 만약 이러한 저서들이 저자의 발가벗기에 소홀하다면 참회록으로서도, 자서전으로서도, 또한 회고록으로서도 가치가 반감되거나 아예 없어져버린다. 그것은 하나의 꾸민 얘기이거나 그에 가깝기 때문이다.

요즘, 담시 오적(五賊)의 시인 김지하씨의 회고록 ‘흰 그늘의 길’이 화제인 모양이다. 아마 김 시인이 발가벗기에 소홀하지 않은 때문이리라.
1960년대 이후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저항시인 김지하씨는 필화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민총학련사건 배후 조종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 그러한 그가 환갑을 넘어서자 회고록 속에 자신을 발가벗겨 놓은 것이다.

김 시인은 최근 출판된 회고록에서 많은 것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나의 아버지 김맹모씨는 공산주의자였다”고 한 것도 그 중의 하나다. 그는 전기회로 기술자인 아버지가 빨치산으로 입산했고, 이후 전기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됐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조국 광복 후 제주를 포함한 전국 곳곳에서도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그 아들이나 손자가 우리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는 공산주의자였다고 말한 사람은 김 시인 외에 아직 들어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김 시인의 지성이 더욱 빛을 발한다.

김 시인은 쿠데타 모의도 털어 놓고 있다. 1970년대 초반 중앙정보부 이종찬씨와 수유리 최남선 별장 잔디 밭에서 만나 쿠데타로 김대중씨를 대통령으로 세우자고 합의했었다며, 그것은 죽음을 각오한 것이었다고 적고 있다.

그는 문단에 등단하던 때의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대학시절 ‘창작과 비평’사에 시 몇 편을 보냈다가 퇴짜를 맞고, 평론가 김현의 비공식 추천으로 시 전문지 ‘시인(詩人)’을 통해 등단했다고 쓰고 있다.

회고록 ‘흰 그늘의 길’에서 김 시인이 완전 알몸으로 발가벗었는지, 아니면 팬티 정도는 가렸는지 본인이 아닌 한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보기 드물게 상당한 선까지 벗어 놓은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김 시인의 회고록이 오늘날 우리들의 지도자, 우리들의 지성인들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많다. 거액의 뇌물을 먹고도 검찰청 입구에 들어설 때까지는 딱 잡아떼는 그 숱한 높은 분들, 엊그제부터 알려진 일이지만 교육장.교장.교감직을 돈 몇 천만원에 사고 팔고 하는 일부 교육자들, 만약 그들이 자서전이나 참회록을 쓴다면 어느 정도 발가벗을 것인가.

그리고 2010년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를 둘러싸고 현재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의 회고록도 꼭 읽어보고 싶다. 앞으로 쓰게 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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