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예보에는 일요일에 큰 비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웬걸 해가 쨍쨍하고 비가 온 곳도 잠시 강우량이 겨우 0.3㎜ 정도가 아닌가. 애써 세웠던 계획을 취소한 억울함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툭하면 예측을 빗나가는 게 어디 날씨뿐이랴.
사람이 살다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닥쳐 일을 그르치는 일이 흔하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쓴 맛을 봤다”고 한다.
▲ 하지만 쓰다고 다 신경질을 낼 건 아니다.
양약(良藥)은 입에 쓰다고 한다.
한방에선 ‘쓴 맛’이 개위(開胃, 위의 활동을 돕다), 조습(燥濕, 기운을 돋우다), 사화(瀉火, 열을 내리다)의 효능을 지녔다고 본다. 몸에 좋다는 인삼부터가 그 맛이 쓰다.
냉이나 달래와 같은 입맛을 돋우는 나물도 특유의 씁쓰레한 맛이 기가 막히고 나른한 날씨에 원기를 불어 넣는다.
쓴 맛의 효능은 춘곤증 해소에 그치지 않는다. 하도 써서 고채(苦菜)라고 불리는 씀바귀는 건위(健胃)는 물론 해열효과가 뛰어나 이를 먹어두면 여름철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쓴 맛이 많은 나물일수록 동맥경화에도 좋고 혈액순환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이런 나물을 좋아하는 것은 동맥경화나 혈액순환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쓴 맛 자체를 좋아해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쓴 맛을 싫어한다.
쓴 맛은 그 맛을 아는 나이가 돼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인생에서도 쓴 맛이 얼마나 삶의 폭을 넓혀주는 것인지 맛을 본 사람만이 안다.
세상사가 예상하고 뜻 한대로 움직이고 어긋남이 없다면 그 또한 얼마나 무미(無味)할까.
그래, 삶이 가고 싶은 대로 가질 않고 비켜갈 때마다 신경질 낼 필요 하나 없다. 맛은 씁쓰레 하지만 생각이 얼마나 풍족해지는지.
쓴 맛을 알면, 세상이 모두 아름다워지는 까닭이다.
또 쓴 맛을 볼 때마다 우리 왜 사는지, 진정 맛있는 건 뭔지,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가까운 사람들 생각이 또르르 키워지니까. `
<부영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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