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상인의 장인정신과 신뢰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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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식 제주대 교수·경영학·논설위원>

개성공단(開城工團)이 2003년 6월 30일 개성공단 1단계 건설 착공식이 이루어진지 6년 만에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예부터 개성하면 송방(松房) 또는 송상(松商)이라고 불리는 개성의 상업세력이 유명하다. 이들은 본래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을 뒷받침한 주축 세력이었으나 벼슬 대신 상업에 전념하면서, 인삼·화문석·종이·부채 등을 중국에 내다 팔고 대신 비단 등을 수입해 전국시장의 경제권을 장악했다.

고려조 400년 동안 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의 상도를 발전시키면서 독특한 상인집단을 형성해 왔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출세 길이 막혔던 구 왕조의 사대부 및 지식층이 개성상인으로 흡수되면서 합리적인 경영과 상술개발에 큰 기여를 하였다.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최전성기를 누린 송상은 경기를 중심으로 육로를 따라 북쪽으로는 황해·평안지방, 남쪽으로는 충청·경상지방까지 영향력을 미쳤으며 전국 각지에 ‘송방’이라는 지역거점을 세위 조직적으로 상권을 관리했다.

그들은 자식에게 경영수업을 시키기 위해 다른 상인의 상점에 취직시켜 수년간 일을 배우게 하는 ‘차인제(差人制) 인사수습제도’를 실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서양보다 200년 앞섰다는 복식부기 회계장부인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置簿法)’을 도입하는 등 일찍이 선진 경영방식에 눈떠 이탈리아의 베니스상인, 일본의 오사카상인에 견줄만한 상도와 경영철학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쌓아온 개성상인의 전통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월남하여 기업을 일군 개성상인들의 후예들은 오늘날까지도 ‘무차입경영·신뢰경영·한우물경영’이라는 송상의 경영철학을 실천하면서 우리나라 경제를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다.

오늘날까지 빛을 발하는 개성상인의 큰 특징은 탄탄한 재무구조를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개성상인의 무차입경영 철학은 개성상인 후예들이 경영하는 기업들이 IMF 외환위기를 순조롭게 넘긴 밑거름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한 가지 사업을 정하면 최고에 이를 때까지 한 우물만 판다는 특징도 갖고 있다. 돈이 된다 싶은 사업에 무조건 뛰어드는 문어발식 확장을 지양하고 우직스럽게 한 가지 업종에만 역량을 집중시켜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개성상인으로는 OCI(옛 동양제철화학, 이회림·이수영), 아모레퍼시픽(서성환), 에이스침대(안유수), 성보실업(윤장섭), 신도리코(우상기), 한일시멘트(허채경), 해성그룹(단사천), 삼정펄프(전재준), 세방여행사(오세중·오창희), 대한유화(이정림), 삼림식품(허창성), 오뚜기식품(함태호), 영풍그룹(장철진), 한국화장품(임광정), 한국후지쯔(윤재철), 한국야쿠르트(이은선), 해태그룹(민후식)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개성상인의 강인한 명맥을 이어오며 낮은 부채비율과 풍부한 유동성을 무기로 불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내는 대표 기업들이다.

수백 년을 이어온 개성상인 특유의 신용과 근면성실, 근검절약 등의 덕목은 시대를 초월해서 기업경영에 빼놓을 수 없는 기본이자 중요한 가치이며, 이들 기업은 21세기에도 한국제조업을 지탱하는 역군들이다.

다만 안정위주에 머무르지 말고 한발 앞선 투자를 감행하는 ‘스피드’(speed)는 보완해야 할 경영덕목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의 경영환경에서는 자본 흐름이 빨라지고 인수합병(M&A) 등 공격적인 투자가 중시되고 있는 만큼 글로벌시대에 걸맞는 변신의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상인 특유의 치밀하고 안정적인 경영방식은 위기일수록 파워를 발휘하기 마련이며, 특히 요즈음과 같은 불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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