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의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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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환 제주대 교수.논설위원>

신제주 도심에서 대정과 중문 방향으로 곧게 뻗어나간 왕복 4차선 도로가 평화로이다. 서부산업도로가 서부관광도로로 명칭이 바뀌었는가 했더니, 어느새 평화로로 다시 바뀌었다. 고유명사인 도로의 명칭을 시시때때로 바꾸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지만, 그래도 용인된 것은 평화라는 언어가 도민에게 선사하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평화로는 제주공항과 중문관광단지를 연결하는 최적의 도로이면서, 주변에 수많은 골프장과 볼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어서, 도민뿐만 아니라 국내외 저명인사와 관광객들에게도 도내에서는 제일 중요한 도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통 신호등이 거의 없는 그 길을 달리면서, 주변의 푸르른 산과 들 그리고 바다를 조망하는 즐거움은 여타의 명승지에서 받는 느낌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평화로가 만들어지면서, 그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여섯 군데에 커다란 구조물이 생겨났다. 즉, 평화로는 여섯 개의 다리 밑을 지나고 있다. 그 다리의 양쪽 벽면에는 차량 탑승자가 보기 쉽게 대형 현수막이 거의 매일 걸려있다. 그 광고물의 내용은 여러 가지로 세월 따라 수시로 변한다. 광고물의 주인은 누구인지도 명시되어있지 않으나, 주로 도정을 홍보하는 내용이라서, 도내의 유력기관이 그 주인일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다리가 게시판인가, 광고판인가?

도내에는 엄연히 지정된 현수막 게시판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관공서 건물 벽에 붙어있는 현수막이야 누가 뭐라 하겠냐만, 도로의 벽면은 현수막 게시판이 아니다. 마치 군중들의 시위하는 모습처럼, 평화로의 통행자들을 압박하는 현수막은 제거하는 편이 좋다. 더구나, 배 밭에서 갓끈을, 오이 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충고하지 않던가? 지방자치의 선거시절을 맞이하여, 선거용으로 오해받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일이다. 육교난간이나, 다리 벽면의 현수막은 정치 후진국, 문화 후진국의 냄새를 풍긴다.

그 뿐인가? 해마다 공무원과 주민들을 동원하여 불놀이 하는 평화도로변 새별 오름에 커다란 선전문구가 자랑스러이 박혀있다. 산이 아직도 광고판으로 쓰이는가? 그 모습은, 언젠가 중국연변 쪽에서 바라다 본 두만강 건너편 북녘 땅의 벌거벗은 산허리에 선전문구가 박혀있던 광경과 흡사해 보인다.

현수막을 얽어매는 그 자리를, 평화적 이미지의 조각품이나, 그림으로 장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장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마저 못한다면, 운전자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게시판 역할도 가능하다. 서귀포 천제연 폭포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리의 옆면은 선녀를 상징하는 아름드리 조각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주변의 계곡과 푸른 숲이 어우러진 칠선녀의 예술품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광고료가 아쉬워서 다리의 난간을 광고판으로 이용하지는 아닐 터인데…. 무분별한 불법광고물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공공기관이 오히려 앞장서서 도시의 미관을 해치지는 않으리라고 믿고 싶다. 무책임하고 오만한 공권력의 형태를 보고 싶지도 않다. 홍보를 위해서라면, 신문, 방송, 컴퓨터 통신망 등 유효하고 합리적인 방법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운전자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평화로 위의 대형 현수막은 철거되어야 할 것이다. 별것 아닌 것을 자꾸 강조하면, 역효과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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