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사회에 신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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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한 장마가 무더위와 함께 20여 일째 계속되고 있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지역경기가 좀처럼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인지 매년 오는 장마이건만 올 장마는 여느 해보다도 유난히 길고 눅눅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은행연합회가 내놓은 금융회사별 신용불량자 현황을 보면 지난 5월 말 기준 우리나라 금융권 전체 신용불량자는 315만3535명이었다.
지난해 말 신용불량자가 263만5723명이었으니까 매월 10만명 넘게 늘어난 셈이다.

제주지역은 어떤가.
금융감독원이나 은행연합회, 금융회사들 모두 지역별로 신용불량자 집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제주지역 신용불량자가 얼마나 될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제주은행이 등록한 신용불량자 수를 기준으로 추정할 때 제주지역 신용불량자 수는 족히 3만5000명 정도는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도내 경제활동인구의 12%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 정도면 신용질서가 붕괴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도대체 무엇이 이 상황까지 이르도록 만들었을까.
‘우선 쓰고 보자, 어떻게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흥청망청 써대는 풍조가 만연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는 은행과 카드사 등 금융회사들이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해 줌으로써 이 같은 토양을 제공한 측면도 많다.
신용질서 붕괴는 비단 은행 고객들의 ‘신용불감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금융사고들을 보면 제주지역 금융 종사자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달포 전에 도내 모 은행 책임자가 거액의 고객 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고 일주일여 전에는 현금자동지급기 출납업무를 담당하던 은행 직원이 수개월 동안 현금지급기 돈을 야금야금 빼먹다 업무 인수인계과정에서 적발된 사례도 있다.

또 모 증권사 간부직원은 증권 투자를 통해 일정 수익을 보장해 주겠다며 자신의 친.인척과 친구 등 지인에게서 10억원이 넘는 돈을 끌어들였다가 투자금을 거덜내기도 했다.

금융기관 속성상 직원에 의한 금융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변상조치 등 내부적으로 사건이 수습되면 쉬쉬 하며 은폐하는 것이 관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도내 금융기관에서 발생하는 금융사고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추정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금융기관 종사자의 이 같은 도덕 불감증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라는 회오리를 헤쳐온 금융권의 생존과정과 무관치 않을 수도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는 과정에서 내부통제 장치가 급격하게 약화된 데도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안전성보다는 수익성을 중시하고 내부조직 또한 효율성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업무 위험성에 대한 감시 및 통제 시스템이 약화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금융기관 사고는 허술한 내부통제 시스템과 금융기관 종사자의 도덕 불감증, 한탕주의, 관리.감독 소홀 등이 빚어낸 구조적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현대사회를 신용사회라 하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가 무섭게 양산되는 신용불량자 실태와 일련의 금융사고 등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과연 신용이 정상적으로 통용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 ‘신용불감증’은 또 한 번의 금융위기를 불러오는 잠재요인이 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신용위기가 나라 경제 전체를 거덜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뼈저리게 인식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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