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아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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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제주한라대학 교수·관광영어과·논설위원>

‘땡’ 하고 시계가 정각을 알리면, 출발 신호와 함께 달려 나가는 선수들처럼 세차게 뿜어 나오는 말들이 우리들에게 튀어든다. 전기 에너지를 타고 언제든 기계만 틀면 나와 세상에 뿌려지는 말들, 이런 양상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 못지않게 준비과정에서 조직되고 목적과 효과가 계산된 말들, 인쇄된 활자, 각종 매스컴을 타고 오는 음성과 문자가 혼합이 되어 세상 구석구석을 모두 점령하는 듯하다.

눈 뜨면 날아드는 말들의 직격탄 앞에 그대로 노출되어 맞으면서, 우리 생활은 점점 획일화되고 사고방식도 은연중에 따라가는 추세가 아닌가. 이런 말들 가운데 진실을 담고 있는 진정한 말은 얼마나 있으며 또 어떻게 가려내야 하는지도 문제다.

물론 자동적 기계적으로 쏟아지는 말들 앞에서 빠른 정보 시대에 산다고 의기양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말이 사용되는 방식에는 무엇인가를 우리 삶에서 사라지게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그것이은 사라지도록 두어도 괜찮은 것인지 의문도 생긴다.

북미 인디언 세네카족의 영적 지도자들은 신이 주신 네 가지 선물이 사랑과 주고받는 능력, 말과 직관의 힘이라고 한다고 들었다. 사랑 받고 그 사랑을 다시 나눠주고,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어 인간은 행복해진다. 그래서 신은 서로를 돌보고 마음을 함께 나누라고 말을 주시고, 또 내적으로 성장하도록 직관의 힘을 주셨으며, 이 선물로 마침내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 말 속에 들어가는 마음과 사랑의 함량은 점점 적어지고 있으며, 그래서 말들이 세상을 밝게 하는데 기여하는 정도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한다. 누구나 내면에는 말의 중요성을 감지하는 직관적 힘이 있을 것이다. ‘말은 신성하며, 거짓말을 하면 그 말은 평생 따라다니며 영혼을 무겁게 짓누른다’는 인식은 우리들에게 각인되어 있지 않은가. 또 ‘신은 우리 거짓말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하늘의 도는 그 그물코가 엉성한 듯해도 결코 놓치는 것이 없다’ 라는 말 속에 함께 들어 있다.

말이 오로지 세속의 실용적인 일에만 쓰이면서 고유의 힘과 신비를 잃고 있다는 자각도 늘 있었다. 내재하는 생명력이 사라지면서 그림자처럼 되어버리는 말을 염려하여 ‘말은 신이라는 기록이 있지만, 우리는 그 범위를 이 세상의 하찮은 영역 안으로 축소시켜서, 텅 빈 벌통의 죽은 꿀벌들처럼 죽은 말들이 악취를 뿜는다’ 고 러시아 시인도 지적했다. 수세기 동안 조상들은 말을 이용하여 삶에서 맛보는 행복과 불행을 담아내고, 세상과 통하고 사물을 이해하며, 기쁨과 아름다움을 낳고, 세상의 고난을 정리하고 해소하면서 마술의 일부와 같이 말을 사용하였는데, 오늘날 우리는 상당수가 그러한 말의 힘을 등한시 한다.

그리고 말을 이용하여 전해지는 조화와 평화의 비전이 우리에게 뿌리박혀 있어서, 행복과 조화의 비전은 끊이지 않고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지금의 말은 그러한 비전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듯이 여겨진다. 아마 우리들이 사악함에 오염 된 정도가 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맨 나중에 조심스럽게 말이 그 일의 전체 모습을 담아 핵심을 추출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미처 느끼기도 전에 사방에서 각종 말들이 나와서 함부로 찌르고, 파헤치고, 썰다가, 흥미를 잃으면서 팽개치고 사라지는 것 같다.

각양각색의 말들이 우리의 삶이 소중하게 다뤄지는데 오히려 큰 방해가 되는 것이다. ‘입을 닫고 감각들을 통제하면 삶이 충만해 지고, 입을 열고 항상 바쁘게 굴면 삶은 희망 없는 것이 된다.’

얄팍하게 말을 사용하면서 체험을 날려버리고 삶이 텅 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가끔은 모두가 입을 다물고 말 하지 않는 기간을 지키면서 말을 아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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