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지방분권 수임 역량의 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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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정부혁신 지방분권위원회(위원장 김병준)가 지난 4일 지방분권 청사진을 발표했다. 향후 5년간 분권형 선진국가 건설을 목표로 모두 7개 분야 20개 과제를 선정하고 추진 일정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적어도 2006년부터는 자치경찰제, 교육자치제, 지방행정기관의 재조정 등이 이루어진다.

또한 2004년부터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사안을 주민이 직접투표로 결정하는 주민투표제와 예산 편성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참여예산제가 도입될 계획이다.

물론 지방재정도 충실해진다. 재정분권을 위해 지방세 이양, 지방예산편성지침 폐지 등을 추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비율를 현재의 51대49에서 2008년에 45대55로 개선키로 했다.

이와 같은 지방분권 청사진의 핵심은 말할 것도 없이 ‘주민 참여’이다. 지방행정, 지방예산 편성, 자치경찰제, 교육자치제 등 지방분권의 주요 제도에 주민 참여가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지방분권제도의 성패는 주민 참여에 달려 있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우리가 특히 관심을 두어야 할 개념은 ‘거버넌스’이다. 간단히 말해서 ‘거버넌스’란 정부와 같은 공공영역과 기업과 같은 민간영역이 정책 결정이나 주요 사회적 관심사에 공동으로 관여해 의사를 결정하고 그것을 집행하는 상호 조정과 협동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방자치의 주요 영역에서 지방정부와 지방의 민간부문이 공동으로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집행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 같은 개념의 ‘거버넌스’가 지방분권의 실현과 정착에서 중요한 까닭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의 이해 상충에 따른 갈등을 자율과 호혜, 그리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소함으로써 지역사회 공동의 이익을 달성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 참여는 그래서 중요하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지역사회에서 ‘거버넌스’라는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이다.

말하자면 지역사회의 민간영역들, 예컨대 기업, 이익집단, 시민단체, 대학 등이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협력을 통해 상호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지역 ‘거버넌스’의 관건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그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유감스럽지만 부정적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지금 사회의 이곳저곳에서 집단 이기주의의 무분별한 분출을 경험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맹렬하게 돌진한다. 사회 전체의 이익은 손익계산에서 제외된다.

예를 들어보자.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 초등학교의 여유있는 공간에 맹인학교 시설을 만들려 해도 주민들은 혐오시설이라며 극렬히 반대하는 현실이다. 반대하는 진정한 이유는 아파트 값이 떨어질 염려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이른바 ‘님비현상’은 우리 사회 도처에 만연되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데 지불해야 할 최소한의 비용도 낼 용의가 전무한 사람들이 우리의 이웃일 수밖에 없다면 우리 사회는 이미 공동체임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뿐만 아니다. 지방분권에서 지역 ‘거버넌스’의 핵심역할을 담당할 비정부단체들, 다시 말해 NGO들은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해 왔다. 이들은 최근 들어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 같은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NGO 이기주의가 대두되고 있다는 비판마저 일어나고 있다. 그들의 일부는 마치 권력기관처럼 행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에 견주어 볼 때 지방분권의 성패가 달린 지역 ‘거버넌스’의 능력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거버넌스’라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규칙 또는 규범이 정립되어 있어야만 한다.

적어도 협력과 상호 조정을 위한 행동의 준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의 우리 사회에는 그러한 규칙이나 규범이 없는 것과 다름없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식에 토대한 상호 존중과 호혜의 미덕이 사라진 황폐한 사회에서 지역 ‘거버넌스’는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제도적인 지방분권화에 앞서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구축해야만 할 토대는 지역 ‘거버넌스’의 역량을 제고하는 과업일 것이다. 그것 없이 진정한 지방분권은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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