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부와 정체성
MB 정부와 정체성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6월 말 대통령의 중도론 선언 이후 MB정부의 정체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중도론이란 극좌도 안되고 극우도 안된다는 의미의 매우 타협적이고도 실용적인 노선이다. 역시 며칠 뒤 청와대는 ‘중도실용론’으로, 다시 ‘중도강화론’으로 보다 구체적인 이름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는 고육지책이다. 진보와 보수세력들의 원색적인 요구와 갈등 사이에서 나온 궁여지책이다. 안보위협과 경제불황, 미래불확실성에 시달리는 현시점의 국민들에게 중도론은 매우 불안정한 노선이며 어필하지 못하는 노선이다. 나의 중도와 너의 중도가 다르며 중도노선에 바탕해서는 미래의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간 MB 정권이 탄생한 이후 표방해온 정책노선 용어들을 보면 유사한 점이 있다. 실용정부, 현장확인, 소통, 중도노선, 실리외교…좋은 말들이기는 하나 ‘MB정권다움’을 보여주는 키워드가 없다. 집권 1년 반이 지난 현시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숨김없이 드러난다. 이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논쟁과 정치를 싫어 하며 편 갈라 싸우기 싫어 하며 돈 안 되는 이념적, 혹은 가치관적 고민에 빠지기를 싫어 한다. 필요하면 그때그때 여러 수단을 사용하면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통치의 이념이나 가치관, 철학, 역사관과 같은 추상적인 리더십 개념에는 별 흥미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엘리트 CEO 대통령의 약점은 바로 정권정체성의 결여로 나타나기 쉽다. 잘은 모르지만 이번 중도론의 표방은 이러한 자신의 정치 스타일이 추궁받자 “굳이 색깔을 밝히라고 한다면 나는 중도론 쯤으로 해놓지” 하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왜 정권은 확실한 정체성을 필요로 하는가. 대통령이 추진하는 외교, 안보, 통일, 경제, 사회, 문화, 복지의 정책들은 장기적으로는 하나의 중심축을 기반으로 움직여야 파워를 발휘하며 예측이 가능하다. 확실한 비전이란 바로 정체성의 결정체이다. 이것이 좌파를 이롭게 하건 우파를 이롭게 하건 정책의 방향들은 뚜렷한 정체성 속에서 수렴되어야 한다. 모든 정책들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고 명분과 가치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이 수많은 정책들을 하나로 묶어 설명할 수 있는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힘이 바로 정체성 (identity)이다. 좋은 정체성은 대통령과 집권세력들을 더 편하게 하며 더 당당하게 만든다. 좋은 정체성은 새롭게 창조되어야 하며 양분선상에서 움직여서는 안 된다.

개인심리학으로 보면 정체성이란 통합적인 자기표현으로 자기 발전은 물론 남들과의 관계설정에 있어 엄청난 중요성을 가진다. 정체성 심리학의 대가인 에릭 에릭슨 (Erik Erikson)은 사람이 자기 정체성 (self-identity)을 가지지 못하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불안과 좌절, 대인관계 갈등에 시달린다고 한다. 자기가 스스로를 누구며 무엇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암묵적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존재의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모든 조직체도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하며 정권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정권에 있어 이 정체성 문제는 바로 리더, 대통령의 문제로 직결된다. 정권 정체성의 정점에는 최후의 책임자, 대통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할 일은 바로 모든 정책들이 자신의 몸 전체에 자리 잡은 정체성에 맞추어 돌아가며, 궤를 벗어나지 않도록 조정해주는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 의사결정, 대화, 행사 모든 것이 다 정체성 발현의 일환이다. 이는 오로지 대통령의 몫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현시점에서 어떤 정권 정체성을 창조해야 하는가. 이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나 답을 찾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우선 본인의 개인적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하는 사람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 사람인가?”의 물음에 스스로 새롭게 답하면 된다. 확실한 것은 “나는 중도에 서서 실용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강력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노련한 정치인이다” 라는 자기 정체성은 어떨까. 남은 3년 반의 임기는 더 이상 우왕좌왕해서는 안 된다.

<한정호 연세대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