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광장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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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제주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논설위원>

유럽에는 광장이 참으로 많다. 유럽의 도시는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설계되었다. 이는 마치 광장을 먼저 군데군데 설치하고 이들 광장을 길로 연결한 것처럼 느껴진다. 성(城)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였기 때문에 아직도 유럽의 도시에는 성곽(Ring)을 중심으로 안과 밖을 구분한다. 반면에 미국의 도시는 수직과 수평으로 도로가 뻗도록 건설된다.


그 결과 유럽에는 광장에 관공서와 교회가 위치하고 광장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공연과 공론의 장이 형성된다. 반면 격자형으로 건설된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모일만한 구조가 형성되지 않는다. 이를 대신하는 것이 몰(Mall)일 것이다.


그리스의 광장은 ‘아고라’라 하여 도시의 정신적인 핵, 시민생활의 중심, 입법상의 집회와 상업기능의 장이었다. 로마의 광장은 ‘포럼디스커션’이라 하였고 신전과 행정관서 그리고 정치적 시설이 모인 신성한 장소였다. 중세에는 도시가 건설되면서 광장이 도시의 핵 그리고 시민생활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중세 이후에는 시청사 앞 광장, 교회 앞 광장, 길드홀 광장, 시장광장 등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우리나라의 광장은 종로의 ‘운종가’로 상업가로의 역할이 부각되며 시민활동과 토론의 장은 아니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유럽과 같은 토론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봉건을 겪지 않고 중앙집권적 왕권이 형성되었고 유교를 받아들임에 따라서 형성된 서열은 토론을 필요치 않게 하였다. 좁은 땅에서 이견은 허용되지 않았고 견해보다는 편가름이 우선이었다. 불편부당한 의견마저도 자기편의 의견이 아니라면 듣지 않았고 심지어 적으로 간주되었다. 치열한 싸움은 상대를 죽일 때까지 지속되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이런 성스런(?) 전투의 첨병으로 서서, 되는 말이건 안되는 말이건 큰 소리로 떠들고 멱살잡이라도 기꺼이 하는 자는 충성스러운 자로 받아들여지고 유용한 인물로 인지된다. 이 치열하고 무지한 싸움에 이성과 지성은 머리를 감춘다.


모두를 위한 공론의 장으로 또 축제의 장으로 열려진 광장에는 이상한 시민들이 모이게 되었다. 마치 자기의 뜻과 생각에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사납게 달려들어 물어뜯고 폭력이라도 기꺼이 행사할 듯한 사람을 요즘엔 시민이라 또 민중이라 부르기도 한다. 소맷자락에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감추고 광장에 나와서도 시민을 자처하기도 한다.


우리의 광장 역시 이러한 묘한 시민이 자리하고 있다. 어느 날 미친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언사를 하는 사람이 광장에 자리하고 떠나지 않는다. 거지도 나타났다. 며칠 후엔 깡패가 나타나서 질서를 잡는다고 한다. 또 어느 날 총과 칼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나치의 행동대장 같은 사람이 광장에 나타났다. 미친놈과 거지와 깡패와 행동대장은 같은 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묘하게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들이 나타난 후 진정한 시민은 광장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간간히 창문을 열어서 오늘은 또 누가 나타났고 자리를 지키는지 훔쳐보기는 하지만 이미 광장은 그들의 차지였다. 이럴 것이었다면 차라리 광장이 없었던 것이 좋았겠다.


이 잃어버린 광장은 물리적 광장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 구축된 공론의 장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이 공간은 더욱더 심하게 미치고 폭력적인 자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들이 댓글을 다는 한 건강한 시민은 광장에 나올 수가 없다.


되지도 않는 논리를 이것저것 들이대는 삼류 학자들, 확실히 미친 자들과 행동대장 들이 사이버상의 광장을 점거하면서 자율성을 논하고 민주주의를 논하는 사태는 확실히 애도할만하다. 그리고 이 섬에는 그렇게 점령된 광장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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