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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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이래로 어떤 시대건 말을 남기고 말은 그 시대를 상징했다.

한국사회에도 시대상을 풍미하는 유행어들이 쏟아져왔다.

1953년 정·부통령 선거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고 외쳤다. 이 구호는 자유당 정권의 부패함과 서민들의 척박한 민생고를 꼬집으면서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압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거 때만 되면 이 구호는 야당의 단골 메뉴가 됐음은 물론이다.

자유당은 “갈아봤자 별수 없다. 구관이 명관이다”는 말로 맞받아쳤고, 어쨌든 선거에 승리했다. 그러나 국부(國富)를 일으키고 국민의 등을 따습게 하겠다던 ‘곳간지기’는 끝내 민심이반을 불러 불명예 퇴진했다.

▲우스갯소리도 시대에 따라 대중들의 입에 회자됐고 그 것 역시 시대상을 담아왔다.

외환위기(IMF) 직후에 전·현직 대통령을 빗댄 우스개가 화제가 됐다.

내용인 즉, 박정희씨는 새벽 종소리를 들으며 솥단지에 밥을 열심히 짓다가 서거했다. 최규하씨는 잘 지어진 밥을 먹으려는 순간, 전두환씨가 숟가락을 빼앗아 맛있게 먹었다. 노태우씨도 먹다 남은 밥에다 누룽지까지 긁어 먹고 자리를 떴다. 김영삼씨는 솥단지만 박박 긁다가 아예 솥단지를 잃어버렸다. 김대중씨는 잃어버린 솥단지를 찾아다녔다는 게 골자다. 웃고 지나치기엔 너무 씁쓰레하다. 1998년 1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TV 국민과의 대화에서 금고가 비었다고 침통해 했다. 나라의 곳간이 비었다는 얘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과연 그랬을까 의문이다.

▲최근 정부는 세금을 대폭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감세정책과 경기침체로 나라의 곳간이 급속히 비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재정도 악화일로다. 제주도만 해도 역대 최대규모의 지방채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 경기회복 등을 이유로 상반기 예산집행을 서두르다보니 당장 하반기 쓸 돈이 없어서다. 지방채도 결국에는 갚아야할 빚이다. 그러나 섣부른 증세와 지방채 과다발행은 조세저항을 부르고 사회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세금을 낮춰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해야 한다. 또 아껴 쓰고 제대로 써야 한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재정이 풍부해야 복지투자도 가능하고, 생활환경도 개선할 수 있다. 사회도 가정사도 마찬가지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의 전형으로 삼는 조선시대 경주 최부자집과 같은 ‘곳간지기’가 절실한 이 시대다.`<김범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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