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석·제주대 교수·경영정보학과·논설위원>
오지의 원주민들은 문자와 기계 등의 고도문명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원주민들은 종이와 나침반 그리고 공학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환경에 맞는 지도를 발명하여 생존해 왔다.
원주민들의 지도는 부족한 자원을 상상력으로 보충한 발명품이었다.
북극 에스키모들은 바다표범 사냥으로 생존했다. 사냥 길에 나서고 안전하게 다시 돌아오려면 지도가 필요했다.
에스키모들이 카약을 탄 채 한밤중에 고래잡이를 나설 때에 플래시가 있을 리 없고, 종이에 그려진 지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더욱이 에스키모들에게는 문자도 없었다.
에스키모들에게는 종이지도가 아닌 다른 지도가 필요했다.
그들은 나무토막을 깎아 ‘나무지도’를 만들었다. 나무지도는 물에 젖어도 상관없어 괜찮았다.
에스키모들이 나무지도를 읽는 독도법은 이렇다.
에스키모들은 나무지도를 손으로 더듬으면서 해안선의 윤곽을 알아낸다.
나무지도를 읽을 때에는 손가락을 나무지도의 틈새에 넣은 다음 그 굴곡을 느낀다.
나무지도의 굴곡을 느낀 다음에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해안선의 굴곡을 상상하고 떠올린다.
나무지도의 촉각과 해안선에 대한 상상력이 정확히 일치해야만 길을 잃지 않는다.
에스키모의 나무지도는 눈으로 보는 지도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지도이다.
킴벌리 평원은 호주 서부에 위치해 있는 광활한 황무지를 일컫는다.
사막 관목지대와 붉은 사암절벽이 혼합되어있고 사방으로 깊은 협곡 천지다.
이곳은 너무나도 척박하여 일 년 중 여덟 달은 전혀 비가 오지 않고, 기온은 섭씨 54도 까지 올라간다. 심지어 습도가 100%인 때도 많다.
완전히 미개척지인 이곳에서 호주 원주민들은 살아남았다.
드넓은 오지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사냥을 하려면 원주민들에게 지도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호주 원주민들은 문자도 없고 종이와 나침반도 없었다.
그들은 전혀 다른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지형의 풍광을 노래로 전달하는 ‘노래지도’가 해결안이었다.
노래지도가 길잡이 역할을 하여 사냥 지역과 샘터와 쉼터를 알려주었다. 사냥터에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준 노래는 세대를 거치며 전수되었다.
1967년 텍사스 주 샌안티니오에서 변호사 허버트 켈러허는 그의 고객 롤린 킹을 만났다.
롤린 킹이 소유한 지방 항공사를 접는 데 필요한 서류 작성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켈러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롤린 킹이 갑자기 레스토랑의 냅킨 위에 삼각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삼각형을 그리고, 그 꼭짓점 각각에 샌안티니오, 휴스턴, 댈러스라고 적었다. 간단한 지도였다.
당시 세 도시에 운항하는 대형 항공사들은 가격이 비싸고 시간을 잘 지키지 않아 소비자 불만이 높았다.
롤린 킹의 삼각형 지도는 대형 항공사와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면서도 저가와 정시운항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형을 요약한 그림이었다.
켈러허는 냅킨의 삼각형을 보자마자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1971년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를 열었다.
인사조직 분야의 석학 페퍼 교수는 1972년부터 20년간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기업을 조사했다.
조사결과 사우스웨스트 항공사가 1위를 차지했다.
연구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이 매일 생각하는 것 가운데 약 12%는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하루에 16시간 정도 생각을 한다면, 그 중 2시간은 아직 생기지 않은 일을 생각하는 셈이다.
금붕어는 어항 속의 좁은 공간에서 지낼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금붕어는 현재의 순간에만 얽매여 지내지만, 사람은 시공간을 확장하여 상상하는 능력을 갖기 때문이다.
자원이 부족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처한 우리 모두에게 지도의 상상력이 필요한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