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마공신(獻馬功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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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濟州島)의 풍수전설 가운데 명당(明堂)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우선 착한 일은 권장하고 악한 일은 징계한다는 권선징악적(勸善懲惡的)인 면을 담고 있다. 부자이건 가난하건, 신분이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적덕(積德)과 적선(積善)을 지향하는 대동적인 삶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다.

두 번째 특징은 지리적 역사성에 근거한 자연(自然) 극복 전설이라는 점이다.

제주 섬의 불모적(不毛的)인 풍토를 풍수지리에 의해 정신적 위안을 받음으로써 결코 좌절하지 않으려는 조상들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제주에는 6대 음택(묘자리)과 6대 양택(집터 및 마을자리)이 명당 가운데 으뜸으로 전해지고 있다.

6대 음택은 제1 사라(한라산 사라오름), 제2 의항(蟻項, 한라산 개미오름), 제3 영실(靈室), 제4 해두명(亥頭明, 한라산 서북쪽), 제5 반디기왓(반득전·蟠得田, 남원읍 수망리 민오름 서남쪽), 제6 반화왓(蟠花田. 또는 서독만·西犢萬, 한림읍 누운오름 서쪽)을 일컫는다.

또 6대 양택은 제1 구아낭(狗兒囊, 제주시 연동 도청 남쪽), 제2 여호내(남원읍 신흥2리 ), 제3 사반(蛇盤, 안덕면 창천리), 제4 한다니(漢橋, 한림읍 신흥리), 제5 옷귀(衣貴, 남원읍 의귀리), 제6 어도(於道, 애월읍 봉성리)를 말한다.

6대 음택 가운데 제5 반디기왓과 6대 양택에서 제5 옷귀의 전설은 경주김씨 입도조 김검용(金儉龍)의 7세손인 김만일(金萬鎰·1550∼1632) 집안과 직결된다.

▲김만일의 조부는 선친을 잃고 장사를 지내기 전이었을 때다. 마침 중국에서 제주의 명혈들을 끊으러 온 호종단(또는 호종달이)을 만나 선친 묘자리랑 집터를 구하게 된다는 게 전설의 대강이다. 이 과정에서 적덕과 적선이 그 배경으로 깔린다.

이후 김만일은 뛰어난 목축능력으로 말을 1만 필까지 기르며 임진왜란 등 국가가 위급할 때마다 모두 1300필이 넘는 말을 보내 국난극복에 기여했다.

이 공로는 그는 인조 6년(1628) 지금의 부총리급인 종1품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제수되어 전무후무한 ‘헌마공신(憲馬功臣)’으로 칭송되고 있다. 그의 후손들도 200여 년 동안 산마감목관(山馬監牧官)을 역임하며 말 사육에 힘써와 오늘날 의귀리는 ‘제주마(濟州馬)의 본향(本鄕)’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제 곧 김만일 묘역(의귀리 선데기소 인근)이 제주도지방문화재로 지정된다고 한다.

묘 자체의 문화재적 가치 제고와 함께 제주마의 역사문화자원화에 반가운 소식이다.

<김범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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