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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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서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한다.

청력과 시력이 떨어져 주의력과 판단력이 시원찮고 신체 반응이 느려진다.

새로운 지식을 키워가기는커녕 기억의 무게를 감당하기도 벅차다.

그래서 수즉다욕(壽則多辱), 오래 살다보면 별일, 별의별 사람 다 겪어 욕되는 일 많게 마련이라고 하는 것일 게다.

한평생 만나는 사람들과의 촌수를 합하면 41019촌이다. ‘4(사, 士) 1(일, 一) 0(공, 工) 9(구, 口) 촌(寸)’을 위아래, 또 옆으로 휘감으면 ‘목숨 수(壽)’가 된다던가.

▲나이 50이 넘으면 나타나는 증상 중 몇 가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고,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불현 듯 다가오는 사랑을 하고 싶고, 해수욕장에 서면 옷 입은 채로 뛰어들고 싶은 생각도 든다.

영화나 혹은 TV 인간극장 같은 것을 보다가 주책없이 눈물을 주룩 흘리기도 하고, 뽕짝조 흘러간 옛 노래가 모두가 인생철학인 것만 같다. 하지만 겉으론 안 그런 척.

머리 염색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지만 하루하루 집에 가는 길이 쓸쓸하다. 머리칼은 빠지고, 눈가에는 주름살마저 패어간다. 어린 시절 ‘사춘기’에 빗대어 ‘오추기(悟秋期)’, 인생의 가을을 깨달아야할 나이가 됐다는 신호들이다.

그래서 “늙어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는 건가.

갖가지 회한에 한숨을 짓기도 하고, 깊은 상념에 잠기기도 하지만 <고향 바다, 옛 동무들과 한데 어울리는 것>이 갈수록 소중해지고 아름답다.

▲국민 가곡 ‘가고파’ 작곡가 김동진 선생이 9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고인의 노래 중에는 가고파 뿐 아니라 <봄이 오면>, <수선화>, <내 마음>, <못잊어>, <목련화> 등 주옥(珠玉)같은 가곡들이 많다.

그 가운데 ‘가고파’는 으뜸이다.

사실 ‘가고파’란 3음절이야 말로 우리 가슴 가운데 자리한 가장 고귀하고 순결한 정서일 것이다. 그게 무어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 누구에게나 가고파하는 곳이 있으니까.

그리고 나이가 들면 안다. 그게, 늘 어딘가를 ‘가고파’하다가 끝난다는 걸.

천수(天壽) 나이. 우리 ‘가고파’ 선생은 욕(辱) 없이 살다갔다고 한다.<부영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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