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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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스개 소리로 크게 유행한 내용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TV 낱말 알아 맞추기 퀴즈에 출연했다.

할아버지가 ‘천생연분’이란 단어를 설명하는 차례가 됐다. 할아버지는 “우리와 같이 둘도 없이 즐거운 사이를 뭐라고 하는 가”라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즉각 “웬수”라고 답했다.

할아버지는 당황해 ‘아니, 그게 아니고 네 글자로 된 단어“라며 힌트로 손가락 네 개를 폈다.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웃음을 띠며 말했다.

“평생 웬수”라는 것이었다.

▲광복절 제64주년이었던 지난 주말은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낮 12시가 좀 지났을까 집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동생들이 모처럼 점심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에 꼭 참석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여름휴가 시즌이 다 지나가는데 서로 만나지 못했고 세 동서 가운데 바로 아랫동서의 큰 아들이 여름휴가를 끝내고 서울로 가는 송별회도 겸한다고 했다.

동서의 큰 아들은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월등한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스타다.

평소에도 조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기에 흔쾌히 응낙했다.

내심은 막내 동서까지 참석한다니 오랜만에 세 동서의 만남이라는 데 방점이 찍혔다.

▲우리 세 동서는 점심을 끝낸 뒤 제주시 동문시장으로 향했다.

몸 전체 길이가 어른 손바닥만 하다는 한치 오징어를 먹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접시에 올라온 한치는 나무젓가락으로 들어도 잘 떼어지지 않았다.

주인을 불러 이렇게 한치를 썰 면 어떻게 먹을 수 있겠냐고 핀잔을 주었다.

주인은 “그들도 마지막까지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붙어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는 오징어를 먹기 좋게 잘 썰었는데 정 때문에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평생 웬수’라는 할머니의 속뜻 역시 ‘평생 동반자’라는 의미일 터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일수록 떨어지기 싫은 게 우리 인간사다.

그래서인지 우리 세 동서의 만남은 그날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김범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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