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16세의 나이로 자살특공대에서 부역을 했던 좌정인씨(73.한경면 고산1리)는 고산리 자구내 포구와 속칭 ‘엉알’ 일대에 파놓은 11여 개의 어뢰정 격납고를 보여주며 그때를 회고했다.
좌씨에 따르면 1944년 초 일본 해군은 자살특공대 60여 명을 고산리에 주둔시켜 미 군함의 함포 공격을 막기 위해 어뢰를 실은 1인승 보트 30여 척을 보유했다.
좌씨는 “자살특공대원들은 일본에서 비행조종훈련을 마친 학생들이었지만 전투기가 없어 인간 어뢰가 되어 미 군함에 자폭하기 위해 고산리에 주둔했으며 이들로 인해 해안 일대 주민들을 모두 소개시켜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특히 함경도 광산에서 일하던 조선인 노동자 300여 명이 이곳까지 끌려와 어뢰정 격납고로 사용할 굴을 파다가 희생당하고 고된 노동과 굶주림으로 이들은 사람답게 살지 못했다며 좌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좌씨는 “자살특공대로 맞서는 일본의 최후의 발악으로 당시 위험한 나날이 계속됐고 이후 광복을 맞아 주민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다”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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