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추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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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 의원 4.3특별법 제정 고마움 기려
평화, 인권, 통일, 민주의 화신 김대중 선생님의 서거를 애도하면서

선생님! 기어이 가시고 마시는군요. 보통사람으로선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면서 이 땅에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기틀을 다져놓으신 분이셨기에 병마를 극복하실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만 부족한 저희들을 남기시고 기어이 가셨습니다. 하늘의 뜻인가 하면서도 앞이 캄캄하기만 합니다.

과거 유신체제 하에서 저희 청년 학생들은 선생님이 버팀목이 되어 주셨기에 흔들림 없이 민주화 투쟁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1978년 말 감옥에서 나오시고 이듬해 정초에 저희들 민청학련 관련자들 몇몇이서 동교동 자택에 세배하러 갔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제주 출신인 것을 아시고서는 제주출신의 목포상고 친구에 대한 추억과 제주4․3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특히 4․3 당시 목포에 있으면서 그 실상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그리고 이 땅에 그러한 잔인한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진실을 잘 모르는 저희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 후 대통령 선거 때마다 제주에 와서 4․3진상규명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 저희들은 선생님께서 새 시대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또한 그것이 역사의 순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고 전두환 일당의 군사쿠데타로 험악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문, 납치, 사형선고, 감옥과 연금 등의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신 선생님께서는 1998년 드디어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하셨습니다. 세계 역사상 이러한 경우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승리였고 이 땅의 축복이었습니다. 전 세계에 떳떳이 고개를 들 수 있는 민주 시민이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땅의 한과 서러움을 한 몸에 껴안고 스스로 그것을 체험하면서도 결코 총칼에 굴복하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정의와 진리를 위해 투쟁하시고 희망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대통령이 되고나서는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용서와 화해, 통합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가끔 저희들 민주화 운동자들을 불러서 격려하여 주셨고 그 때마다 제가 4․3에 대하여 건의하면 아무 말씀 없이 고개를 끄떡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곧장 민주당 내에 4․3특별위원회(위원장 김진배 의원, 간사 추미애 의원)를 만드시고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작업에 착수하였습니다. 덕분에 정치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1999년 12월 4․3특별법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4․3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아시고 계신 대통령님의 결단이었습니다.

2000년 1월 11일 4․3 진상규명운동을 했던 사람들(고희범, 김두연, 박창욱, 양금석, 양동윤, 양조훈, 임문철)을 청와대로 불러 격려해 주시고, 4․3특별법에 서명하셨습니다. 펑펑 눈물이 쏟아질 뿐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4․3특별법을 만들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함으로써, 세계에서 인권국가로 우뚝 설 수가 있었습니다.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입니다.

그 해 말에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을 청와대로 불러서 만찬을 베풀었을 때에 제가 감히 4․3진상규명 후속조치가 흐지부지 되고 있고 특히 일본에서 4․3 신고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즉각 제대로 하도록 지시하여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선생님! 너무나 너무나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평생 목숨을 걸고 찾아내고 지키려 했던 인권, 평화통일, 민주주의 문제 등이 위기에 처하자, 와병 중에서도 “행동하는 양심”을 갈파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일구어낸 보편적 가치들을 지키지 못하는 저희들에겐 너무나 부끄러운 질책이었습니다. 나랏일이 걱정되어 편히 눈을 감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뿌려 놓은 씨앗들이 이미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나무 우거진 숲처럼 되었습니다. 저승에서 4․3 영령들이 선생님을 찬양하면서 꽃 만발한 곳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이 세상 일들은 저희들에게 맡기시고 영면하시옵소서.

2009년 8월 21일
국회의원 강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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