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에 즈음하여
故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에 즈음하여
  • 제주일보
  • 승인 2009.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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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전 처음 고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국회에서 민족의 화해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 직접 참석하였습니다. 그분은 맨 앞자리에 자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미사내내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아주 정성을 다해 겸손되이 참례(僭禮)하였습니다.

평생 하느님을 의탁하고 살아온 인생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대통령 이전에 자연인이자 신앙인의 본보기를 보는 것 같아 너무도 기뻤습니다.

그분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헌신을 다했습니다.

이로 인해 군사정권하에서 온갖 박해와 시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수감생활, 고문과 가택연금 그리고 망명생활마저 감당해야 했습니다. 죽을 고비만도 몇 번을 넘겼습니다.

때로는 바다에 수장될 뻔도 했고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자식마저 고문을 받고 병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때마다 그분은 쓰러지지 않고 인동초(忍冬草)처럼 다시 일어섰습니다.

하늘의 뜻이었을까. 결국 그분은 대통령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지역과 계층간의 분열과 갈등, 남북간 대치, 경제위기 등으로 점철된 국가를 상생과 화해의 살맛나는 국가로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에 우선 자신의 정적(政敵)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고통을 안겨주었던 이들을 용서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일례로 수십년간 자신을 감시하던 이를 청와대로 초대하였고, 심지어는 자신을 사지로 내몰았던 최고권력자를 포용하였습니다. 또한 주변의 우려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몸소 북한을 방문하여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 내어 참된 남북화해의 물꼬를 트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독재종식과 민주주의 실현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입니다. 바로 그 중심에 그분께서 자리하고 있습니다. 분명코 그분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초석이자,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화해의 전도사입니다.

까놓고 말하자면, 제주 4·3이 아픔과 갈등을 넘어 화해와 상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우리 제주도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섬으로 정착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그분의 관심과 노력덕분이라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그분의 진면목은 하루를 더할수록 빛을 발하였습니다. 이는 국경을 넘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퇴임하고서는 국가원로로서 국가가 위기 때마다 사심없는 조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 많은 국민들이 그분의 서거에 비탄에 빠져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부성(父性)을 지닌 너그럽고 자애로운 지도자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더욱 가슴이 아플 따름입니다. 이를 넘어 계층과 지역, 정파간 골이 점점 깊어만 가고, 남북의 긴장관계가 고조되어 가는 지금의 현실을 보노라니, 그분의 존재가 더욱 넓고 깊게 와닿습니다.

이에 우리는 슬픔에서 벗어나 단단한 다짐을 하도록 합시다. “자신의 영달과 이해관계를 넘어서 화해와 용서, 포용과 상생, 대화와 소통을 통해 살맛나는 국가를 구현해 나가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가겠노라”고.

이로써 그분께서 그러했듯이 인동초처럼 새 힘과 용기로 다시 일어서도록 합시다.

<고병수·천주교 제주교구 복음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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