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타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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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별도봉 산책로 입구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코스모스는 벌써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듯하다.

하늘은 점점 높아지는 듯하고 구름 모양도 완연히 달라졌다.

절기의 변화는 참으로 오묘해서 그제 일요일은 처서(處暑, 23일)였다.

한자 ‘처(處)’는 머물러 정지한다는 뜻이니 곧 더위가 머물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인 듯하다.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정말 어제부터는 바람 끝도 가볍고 가을이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8월 25일)은 음력으로 7월 6일이다.

옛 선인들은 음력 7월을 맹추(孟秋)라고 표현했다.

미어진 미닫이의 창호지를 새로 발라 말리는 초가을이라는 의미다.

또 오는 음력 7월 15일은 지금은 사라진 명절날이다.

백중(白中, 白衆), 백종(白腫), 망혼일(亡魂日) 등 이름도 갖가지어서 유래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 무렵이 과일이나 채소가 많이 나는 절기이므로 초기에는 수확축제였던 것이 분명하다.

뒷날 돌아가신 부모의 넋을 위로하는 망혼일로 변한 것은 불교가 성했던 고려의 유습으로 보인다.

효심이 지극했던 목련존자가 100가지 과일로 모든 부처들에게 공양을 올려 지옥에 빠진 어머니의 영혼을 구했다는 날이 이 날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오면 점차 민간 잔치날 형태로 변한다.

선비들은 야유회로, 농사꾼은 백중장터에 모여 하루를 먹고 마시며 가을맞이 놀이판을 벌였다.

제주에서도 이날은 곳곳에 놀이장터가 열렸다.

할아버지 손잡고 백중장터에 가을맞이 놀이를 가는 아이들은 얼마나 신이 났는지. 그렇게 음력 7월은 지나간다.

▲그러는 사이, 논에는 벼가 무르익어갔고 과수원에는 ‘마루메루’가 풍만해지고 ‘호라이깡’은 빨갛게 제 색깔을 내기 시작한다.

그러면 겨울철새가 날아오고 은하수가 점점 하늘 복판으로 흘러내리는 가을이 온다. 누군가는 가을을 “여름이 타고 남은 것”이라고 했다.

경제위기, 북핵문제, DJ서거, 도지사 주민소환투표 등 우리를 더 무덥게 했던 2009년 올해 여름이 이렇게 다 타간다.

곧 재만 남기고 모두 사라지리라.

그러면 선선해진 바람 끝처럼 우리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겠지.

뜨거운 여름이 지나간 뒤 가을 단풍이 곱다고 한다. <부영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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