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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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 수십 번, 혹은 수백 번 누군가와 협상한다.
뭔가를 사 달라고 떼쓰는 자녀와, 약속장소와 시간을 놓고 친구와 즐거운 실랑이를 벌이곤 한다. 이는 분명 ‘밀고 당기는’ 협상이다. 협상은 늘 이렇게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는 이를 협상으로 보지 않는다. 계산적으로 비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협상은 심각한 갈등이 조성된 후 당사자들이 테이블에 마주앉아 벌이는 게임일 뿐이다. 극한 대립 끝에 ‘극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협상이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이러한 인식 탓인지 우리의 협상력은 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식이었다. 문제가 불거진 후에야 호들갑이지, 잠복기 때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간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많은 실패를 경험한 것은 준비가 철저하지 못해 협상과정에서 밀렸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쓴맛을 톡톡히 안겨준 한일.한중어업협정, 한중마늘협상, 한미통상협상과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문제를 키워 해결하려는 습성 못지않게 장유유서와 권위주의 문화도 우리의 협상력 부재의 원인이다. 윗사람의 의견이 무조건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와 그 문화가 토론과 합의를 밀어내고, 지시와 복종을 요구하면서 협상 자체를 터부시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시스템은 발생한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하는 장점이 있다.
떼를 쓰는 자녀에게 눈을 부라리면 그만인 식이다. 그러나 협박과 위협에 근거한 이러한 조폭적 문제해결은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덮는 봉합이고, 불만을 키우는 요인일 뿐이다.

▲상대방을 철저히 속이는 것이 훌륭한 협상으로 간주되던 시절이 있었다. 손자병법이 예시한 미인계, 고육계, 반간계, 연환계 등은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현대엔 이러한 수법이 통하지 않는다. 상대를 한두 번 속일 순 있으나, 주위의 모두를 속일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요즘은 ‘서로 협력하고, 신의를 지키는 것’이 올바른 협상태도다. 구축된 신뢰가 서로에게 큰 이익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상은 상대 입장에서 나를 보고, 상대에게 나의 입장이 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입장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다. 이 설명이야말로 협상에서 누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한국의 협상력 부재는 이러한 입장설명이 불충분한 데서 비롯됐다.

▲화물연대 파업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진행되고 있는 파업의 후유증도 커지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원자재를 제때 공급받지 못해 조업 차질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화물연대와 컨테이너 운송측은 협상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부터 의견이 맞서면서 서로간 신뢰를 깨고 있다. 게다가 힘으로만 문제를 풀려고 한다.

이로 인해 당사자들의 마음은 ‘불신과 앙금’이라는 생채기로 덧나겠지만, 경제의 주름은 깊어질 듯 싶다. 이는 우리의 그릇된 협상문화가 가져온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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