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결실의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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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節氣)의 변화는 오묘하다. 처서(處暑)가 지나고 9월로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더위가 사라졌다. 아침 저녁으론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바람결도 갑자기 달라져 끈끈하지 않고 몸에 감겨들지 않는다. 따가운 침이 없어진 햇살은 한결 너그러워졌다. 그런 바람과 햇살은 누가 관리를 하는지? 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산과 들에도 가을빛이 물들었다. 한라산 중턱엔 갓 피어난 붉은빛 억새가 하늘하늘 모습을 드러냈다. 길가에 활짝 핀 코스모스는 갈바람에 산들거리며 계절의 정취를 돋우고 있다.

올 여름 날씨는 예년처럼 혹독하지는 않았다. 열대야의 시달림도 거의 없었고, 비가 잦은 만큼 한낮의 폭염도 덜했다.

그래도 더위를 처분하고 맞은 9월은 풍요롭다. 어느 작가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구월에는 배가 부르고, 아무리 모진 사람도 구월에는 시를 읽고, 아무리 외로운 사람도 구월에는 사귈 친구다 많다”고 노래했다.

이렇듯 결실의 계절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지난 여름의 터널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서거·소환정국의 잔해(殘骸)가 짙게 드리워진 때문이다.

두 전직 대통령의 잇단 서거가 전 국민적 충격을 안겼고, 사상 첫 광역단체장 주민소환투표가 제주에서 실시되면서 몸살을 앓았다.

지난 여름 대한민국은 ‘상중(喪中)’이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한국 민주화에 큰 족적을 남긴 전직 대통령 두 분이 우리 곁을 떠났다. 서거 이후에야 그 분들의 가치와 자취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 가슴 한 편이 휑하다. 그들을 기리는 국민들의 추모열기가 뜨거웠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일생은 한편의 드라마처럼 파란만장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86년의 삶을 그처럼 질곡과 영욕으로 살다간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노 전대통령 역시 비타협적 원칙주의와 탈권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득권의 해체를 시도했다.

정치적 시각을 달리하는 쪽도 있겠지만, 두 전직 대통령이 이끈 시대는 그래도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남북관계에 온기가 감돌았다.

현 정부와 보수세력은 서거한 두 전직 대통령이 이끈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깎아내린다. 하지만 현정부의 현실은 어떤가. 소통부재로 갈등의 골이 깊고 남북이 대립하고, 사회 양극화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강남 땅부자 내각이 출범하고 상위 1%를 위한 정책들이 나오면서 서민들의 허탈감을 키우지 않았는가. 그런 것과 비교해볼때 서거한 전직 대통령들의 시대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10년’이 아닐까.

서거정국 이후 현정부가 소리높여 외치는 화해와 소통의 메시지가 아이러니다.

통합과 소통의 목소리는 소환정국의 터널을 빠져 나간 제주에서도 새삼 화두다.

저조한 투표율로 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은 무산됐지만, 그 발단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고, 투표장에 가지 않은 도민들의 뜻이 소환 찬반을 떠나 도정에 대한 무관심의 표출은 아닌지 곱씹어 볼 일이다.

소통의 성패는 결국 진정성이다. 도정이든 국정이든 작은 목소리에도 낮은 자세로 귀 기울일 일이다.

이 수확의 계절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음미해본다. 진정 살아있는 교훈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도 이를 쉽게 망각한다. 키가 클수록, 지식이 많아질수록, 부가 쌓일수록, 윗사람이 될수록, 권력이 커질수록 그 이치를 잊어버린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 나타나는 갈등과 분열의 골도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는 독선적 모습이 투영된 결과는 아닐까.

지난 여름의 고단한 기억을 뒤로 하고 가을은 또 그렇게 찾아왔다.<오택진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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