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호를 보고 있느라면 17세기의 해양 패권을 장악하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무역활동을 했던 네델란드인들의 기상을 엿볼 수 있다. 하멜호에는 하멜시대의 전시물뿐만 아니라 작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의 신화를 우리에게 안겨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네델란드 사람 거스 히딩크 감독의 전시관도 함께 있다.
헨드릭 하멜이 ‘하멜표류기’를 써서 처음으로 은둔의 나라 조선을 서구인들에게 알렸다면, 거스 히딩크 감독은 축구를 통해 한국인들의 강인한 정신과 투지를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 네델란드인이 공교롭게도 350년 후에 제주에서 다시 재조명된다는 것은 역사적인 시간성을 뛰어넘는 어떤 인연이 제주 사람들과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두사람을 적절하게 묶는 콘텐츠를 개발한 남제주군 관계자분들에게도 그 훌륭한 아이디어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한편 8월 18일에는 ‘하멜의 재발견:제주-네델란드 협력’이라는 주제로 제주대 평화연구소와 네델란드 사회과학원(ISS)이 공동 주최하는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1653년 하멜이 대만에서 나가사키로 가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제주 해안에 표류하고, 그 이후 13년 동안 한국에서의 핍박과 고난의 생활을 거쳐 가까스로 나가사키로 탈출, 고국에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멜의 끈질긴 삶의 의욕과 진취 정신이 투철한 데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진취정신을 우리는 하멜에게서 배워야 한다.
17세기의 네델란드는 영토는 작았지만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화란상인을 중심으로, 해상력을 장악했던 패권국가였다. 그리고 오늘날은 1700만 정도의 인구와 작은 영토를 가진 국가이지만, 2만5000달러의 국민소득과 헤이그, 암스테르담 등 세계적인 도시를 배경으로 가장 세계화가 잘된 국가 중의 하나이다.
대학을 졸업한 네델란드 사람이면 누구나 영어는 모국어처럼 잘하고 프랑스어, 독일어 등 보통 3~4개 국어는 한다고 한다. 이런 어학능력이 네델란드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 곳곳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네델란드는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이 맺어질 때까지 구교와 신교 간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됐던 국가이다. 그 이후 네델란드는 다양한 종교와 인종갈등을 넘어 서로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른바 합의제 민주주의(Consensual democracy)를 발전시켜 온 나라이다.
관용(tolerence)이란 자기와 견해가 다른 것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관용의 정신이 다양한 인종과 종교에도 불구하고 네델란드인들로 하여금 모범적인 민주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게 했다.
요사이 우리 사회에 노사갈등이 무척 심각하다. 혹자들은 노사화합을 바탕으로 국가 경제를 발전시킨 ‘네델란드 모델’을 우리의 노사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네델란드 모델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이면에 깔린 ‘관용’에 바탕을 둔 노사문화를 먼저 배워야 할 것이다.
분단의 영향으로 흑백적 사고가 강한 우리 문화에서 그러한 관용의 문화가 발 디딜 틈새가 있을까? 네델란드에게서 우선적으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다양성에 기반을 두고 과정을 중시하는 관용의 태도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하멜과 히딩크를 생각하면서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우리 제주인들에게도 네델란드인들의 진취적인 마인드와 관용의 정신이 각인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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