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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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비행기는 이륙해서 좀 날다가 심하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좌석 벨트 등이 다시 켜지면서 비행기는 높이 솟아오르는가 하면 곤두박질치며 아래 공간으로 추락이라도 하는 듯 떨어지다가 다시 올라 왔다. 바닥에 놓아 둔 물건이 구르고, 어린 아이들은 울기 시작했으며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위생봉투를 꺼내 들었다. 폭풍에 휘몰리는 나뭇잎 같은 비행기 속은 자연 앞에서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였다. 식은땀을 흘리며 모든 사람들이 오직 한 가지 무사 착륙만을 빌고 있는 듯 했다. 어떤 위대한 손이 기장과 승무원들을 도와서 이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목적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지상으로 이 비행기를 인도해 달라고. 온 마음을 다해 빌어서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박살내서 부숴버릴 뜻은 없었던지 비행기는 제대로 착륙하였다. 다들 해쓱해진 얼굴에 감사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내려서 공항 건물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한 남자가 큰 목청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무사히 내려서 기뻐하나 했더니 아니었다. “아, 아까 그 인간 말이야, 내 앞에 앉았던, 진짜 짜증나게 하는 거 있지.” 사람들은 눈이 둥그레져서 그를 바라봤다. 죽을락 살락 하다가 겨우 안전해진 상황에서 처음으로 한다는 짓이 앞에 앉았던 승객 원망이라니. 무슨 대단한 불편을 당했기에 저러나 의아하기도 했지만, 안도와 평화의 시간을 망치는 그의 느닷없는 태도에 비난의 마음이 더 컸다. 이런 시선들 앞에서 머쓱할 만도 한데, 그 남자는 전혀 안 그런 척 몇 마디 더 불평을 했다.

벌벌 떨면서 생존을 빌다가도 살게 되면, 금방 촐싹거리며 옆 사람을 욕하고 원망하며, 자신을 포함한 주변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행실, 사실은 그 사람만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감사 보다 원망이 더 빠르고, 사랑 보다 미워하기가 훨씬 쉽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횟수 보다 괴롭히고 저버리는 일이 얼마나 더 빈번한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사랑과 감사의 정, 그럴수록 삶은 메마르고 시들해지는 것인지 모른다. 요즘 영적 전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관련 책들이 번역되고 있는 것도 보다 충만하고 의미 깊은 삶에의 갈망 때문 같다. 예를 들면 ‘내 안의 어두운 기억들을 정화’하는 프로그램이라는 ‘호오포노포노’에 대한 열성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하와이 원주민의 말로 ‘원인 정화’라는 뜻이며, 큰 주제는 내가 경험하는 것을 100% 책임지는 것이라 한다. 여러 가지 기억들로 고통을 받을 것이냐, 아니면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이며, 기억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것들을 제로로 만들게 되면 우리는 자유롭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도 저절로 얻어진다는 설명이다. 이 때 마음속 신성과 교신이 필수인데, 그를 이어주는 말이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십시오’ 네 가지라고 한다.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떠든다고 할 수 있겠지만, 네 가지 말들은 가슴에 와 닿고, 그 말을 반복하는 것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우리의 일상은 이런 말을 할 대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날마다 쓰는 물은 구름과 비와 깊은 땅 속의 뿌리와 돌을 거쳐 나에게 왔다. 나의 몸이 되다가 또 나를 지나면서 물의 여정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신비하고 고맙지 않을 수 없다. 맑은 물을 더럽히며 살아가니 미안하고,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소리 없이 자라는 풀과 나무, 피고 지는 꽃과 열매, 곤충과 동물, 그리고 바람과 눈, 해와 달, 모두 어우러져 우리를 살게 하는 수고를 하고, 그 몸과 에너지을 바친다. 그렇지만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용서해라 말한 적이 있던가. 네 가지 말을 통해 암울한 기억들을 씻어내고 순수한 삶의 빛으로 나갈 수 있다면, 또 그러는 동안 생명의 신비가 내 안과 밖에 파동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면, 자꾸 반복해서 믿질 것 없는 말들이 아닌가.

<강방영 제주한라대학 교수·관광영어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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