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PR 시대와 저널리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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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미디어법이 통과되었다. 이제 신문과 방송, 대기업들은 새로운 미디어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분주하다. 신문과 방송의 교차겸영이 허용되고 대기업들의 미디어산업 진출이 보다 용이하게 되었다. 케이블TV에게도 KBS나 MBC 같은 종합편성채널이 허용되게 되었으며 뉴스채널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공중파방송은 물론 케이블 TV, 위성TV에 이제 인터넷을 이용한 IPTV까지 가세하게 되었다. 핸드폰과 DMB 수신기에서도 온갖 프로그램이 쏟아지게 되었다.

폭발적으로 비대해지는 매체 환경

그렇다고 신문과 잡지의 수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불황에 허덕이면서도 그 숫자는 도리어 늘어나고 있다. 라디오의 청취율도 떨어지지 않는다. 광고로만 운영하는 온갖 무가지들도 난무하고 있다. 인터넷 속의 신문과 방송은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만 미디어에 대한 만 미디어의 투쟁이 시작된 기분이다. 이러한 미디어의 폭발과 팽창은 예상하지 못한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온다. 특히 불경기로 이러한 많은 미디어들의 재원이 되는 광고가 충분히 공급되지 못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미디어 범람시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마케팅의 무기가 ‘마케팅 PR(MPR)’이다. 노스웨스트 대학의 토마스 해리스 교수같은 사람은 이제 광고의 시대가 가고 MPR의 시대가 만개한다고 장담한다. MPR은 간단히 말해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미디어의 내용을 직접 노리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 해리스 교수는 결과적으로 유료광고는 줄고 비광고 미디어 공략형태의 마케팅전략이 늘 것이라고 내다본다. 특히 기존 일간신문과 방송(공중파)의 광고는 큰 타격을 볼 것으로 예측한다.

이제 광고의 자리가 MPR로 대체된다면 무슨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기업들은 한없이 늘어난 미디어의 지면과 프로그램을 직접 공략해서 자신들의 회사나 브랜드, 제품의 이름이 나타나도록 한다. 영화는 PPL(영화 속에 특정 제품이 등장하게 만드는 마케팅 기법)로 가득 찬다. 경제지의 경우 아예 제품 소개난을 기사처럼 버젓이 운영하고 있다. 이제 공중파와는 달리 규제가 약한 케이블 TV의 종합편성채널에는 여러 형태의 MPR이 난무할 것이다. 기업 스폰서를 받는 프로그램이 늘고 신문은 기업의 소개기사로 가득찰 것이다. 인기 있는 잡지사의 편집권을 기업이 비밀리에 인수하는 사태도 있다. 내막을 모르는 독자들로서는 교묘한 홍보기사를 억지로 읽는 격이다. 자연스럽게 기업이나 정부의 홍보지나 홍보방송으로 전락한다.

MPR 시대의 도래는 마케팅에게는 절호의 기회이지만 저널리즘에는 큰 위기를 초래한다. 워치독 (watchdog)으로서의 언론의 기능은 약해지고 기업과 단체들의 보이지 않는 홍보 미디어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이는 MPR 시대에 국민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다. 무엇이 광고이고 기사이고 프로그램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미국의 경우 실제 히트를 친 연애소설에 유명기업의 광고카피가 연인 간의 대화 대사로 그대로 실리기도 했다. 이는 처음부터 작가와 계약을 맺은 광고소설인 것이다. 미디어의 뉴스거리를 만들기 위한 고의적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이 MPR의 가장 큰 목표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들은 교묘하게 기획, 제작되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러한 MPR 시대가 도래하면 독자들과 시청자들의 지위는 약해지고 일개 소비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홍보매체 전락 위기의 미디어

이러한 환경에서는 엘리트 신문이나 공영방송의 출현을 기대하기 힘들다. 대기업과 신문사가 컨소시엄을 이루어 만든 방송사가 재원의 창출을 위해 기업의 MPR 전략을 그대로 수용하고 이에 대한 대가를 공공연하게 받을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 모든 기업들이 MPR을 하면 기업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미디어의 발전은 그에 상응하는 광고의 공급을 전재로 해야 하며 기사와 광고, 프로그램과 광고는 엄연히 분리되고 미디어의 편집과 영업이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지금의 국내 형편으로 볼 때 미디어의 대폭발은 MPR의 발전과 함께 홍보성 기사와 프로그램의 난무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한정호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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