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선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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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가을의 문턱에 다가섰다. 보기 드문 늦더위로 아직도 한낮 더위는 여름이나 아침저녁으로 살갗에 스치는 선선한 감촉에서 이미 가을이 시작됐음을 느끼게 한다.

닷새 후 흰이슬이 내린다는 백로(8일)가 지나고 나면 가을의 정취는 한발 더 우리 곁에 다가설 것이다. 올 가을의 문턱은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민족의 큰 명절 한가위(11일)까지 끼어있어 더 마음을 설레게 한다. 풍년농사에 경기가 좋아 모든 사람들이 맞이하는 추석이 풍요로웠으면 좋을텐데 사정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하긴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나름대로 가을이 주는 정취는 남다르기 마련이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붉게 물드는 나뭇잎과 떨어지는 낙엽에서 인생의 의미를 반추해 보곤 한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잠시 시인이 되고, 고독에 젖는 때도 역시 가을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연과 계절을 노래한 시 가운데 가을을 대상으로 한 시가 가장 많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건 아니건 잠시 가을의 시들을 음미하며 8월의 무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가을의 시인’하면 먼저 구르몽을 떠올릴 것이다. ‘시몬, 나뭇잎새 저버린 숲으로 가자/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아직은 때 이른 시점이나 이제 곧 낙엽지는 숲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주여, 때입니다. 여름에는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마지막 과실에게 결실을 명하십시오….’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릴케의 ‘가을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암송하는 시다. 가을을 노래한 시인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다. 굳이 한 사람만 선택한다면 박인환을 꼽겠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사랑은 가고/과거는 남는 것/여름날의 호숫가/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세월이 가면’ 중).

‘한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목마와 숙녀’ 중).

박인환의 두 편의 시는 비단 노래 잘 부르는 가수와 목소리 고운 아나운서의 음성만 아니라 누가 읊어도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모두 한 번쯤 가을의 시를 음미하며 나름대로 알찬 결실을 거두는 가을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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