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중성
인간의 이중성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젊었을 때 스티븐슨이 쓴 소설 중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란 책을 읽었다. 그 소설이야말로 인간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내용이다.

낮에는 제법 점잖고 인자한 천사와 같은 인간이요. 밤에는 정반대로 포악하고 잔인한 악마와 같은 인간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어쩌면 너무도 허황한 것이 아니냐는 평을 받고는 있지만 오늘날에 삶을 영위하는 인간들은 대체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처럼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다원화된 복잡한 사회 일수록 한 인간이 두개의 인간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중성, 그것은 우리 주변에서나 바로 나 자신에게도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집 밖에 나가면 점잖은 현대인이요. 가정에 들어오면 신경질적인 이단자로 변해 버리는 이가 있다. 어떤 모임에 나가면 점잖은 사람이지만 그의 사회생활은 거짓과 위선을 다반사로 변해 버리는 이가 있다. 보다 극단적으로 지적하면 모두가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들과 같다. 이러한 병리현상이야말로 우리 인간사회의 비극이 원천이 되고 타락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의 이중성 때문에 더불어 살아야 되는 공동체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만에 하나 가정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 가정은 불행해지고 한 조직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 조직은 혼란에 빠져서 분열의 긍지에 까지 가게 된다.

우리 자신은 옛날 성현들의 남긴 글들을 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내면적인 이중성을 해결 해 보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 과거부터 모든 철학자나 종교가들 최근에 와서는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을 연구한 이들까지도 과학적 방법으로 그것을 분석하고 해결 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바람직한 해결의 해답은 없다.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탈을 쓴 현대인들은 그 이중성을 해결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 간에 마음을 터놓고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요는 사회가 어려울쓰록 힘을 모아야 하지만 인간자체의 이중성 때문에 마음이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는 난관을 극복하기 어렵다. 사회가 어렵다고 해서 증오의 불을 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람의 불, 화합의 불, 감사의 불을 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 이상 각자가 과욕을 부리며 자기분열, 이기주의, 배타주의, 열등의식 그리고 자기 이중성이 강하게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어지럽고 이질적인 사회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총명한 지혜로 자신을 관찰하며 먼저 자신의 이중성을 지양하고 자기 내면적인 분열을 넘어서서 하나로의 건전한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유명한 성서에도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서로가 화해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여 화합을 위해서이다”라고 했다.

바로 이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화해의 복음이다.

우리 각자는 왜 살아가면서 이중성의 껍질을 벗기고 화합을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며 문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 내면에 깔려 있는 양극화된 이중성,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고민을 우리 스스로 차분히 그 해결방안과 화합의 묘를 찾아야 한다.

바로 이문제가 해결되면 인간의 이중성이 가면을 벗기면서 우리 모두 화합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고태호 제주共改協의장·논설위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