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는 ‘모델하우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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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의 문화재 행정은 의욕이 넘친다.
옛 제주의 행정 중심인 제주목관아의 1단계 정비사업과 삼양동 선사유적지 정비사업은 문화도시를 지향한 제주시정의 열정과 노력의 소산이다.
10여 년 전 지하주차장 부지가 될 뻔했던 제주목관아터를 부활시켜 반듯한 관아건물로 정비한 것은 분명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그러나 제주시의 이런 노력에도 이 문화유산을 정비하면서 그 곳을 건립했던 선조들의 정신과 뜻을 제대로 잇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제주시는 1999~2002년 국비.지방비 175억원을 들여 3년 만에 제주목관아 1단계 정비사업을 쾌속으로 마쳤다. 그런데 다시 올해부터 제주목관아 2단계 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정비의 취지는 제주목관아의 위용을 한껏 높여 면면히 흐르는 탐라국의 역사를 계승하고, 후세에 제주목관아를 역사 문화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 내용의 요체는 목관아의 2층 누각인 망경루(望京樓)와 객사를 새로 짓고, 유물전시관을 개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망경루는 조선시대 명종 11년(1556년) 김수문 제주목사가 창건한 2층 누각으로, 현종 9년(1668년)과 순조 6년(1806년) 두 차례 개건기록이 있다.

또 ‘탐라순력도’나 증보 ‘탐라지’ 등에 목관아 동헌인 연희각의 동북쪽에 위치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제주시는 망경루가 조선시대 전국 20개 목(牧) 가운데 특징적인 건물로, 반드시 새로 지어야 한다며 2단계 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망경루터의 위치가 목관아 내부 건물이었다는 것뿐 현재까지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 드러나지 않았다. 실제로 1991~1998년 제주대 박물관이 몇 차례 발굴조사를 벌였지만, 망경루터라고 볼 만한 유구를 발견하지 못했다. 제주목 객사터 역시 현 제주북교 터로 추정될 뿐 실제 건물위치가 어디고 그 규모가 얼마인지는 모른다.

이러니 제주시의 2단계 목관아 정비를 놓고 설왕설래 말이 적지 않다.
당시 발굴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망경루 위치도 파악하지 않고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전도된 문화재 행정”이라면서 “관련 부지를 매입한 후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그 발굴보고서를 바탕으로 망경루 정비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 4월 열렸던 자문위원들의 의견도 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건물 정비 이전에 문헌자료나 구전 등을 참고해 정확한 건물위치부터 찾아야 한다”, “발굴조사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찾은 후 이를 토대로 정비사업을 벌이자” 등등. 일부에선 “현재 토지 매입이나 정비사업을 펴는 여건으로 볼 때 망경루 터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적당한 위치에 탐라순력도 등의 망경루 그림을 참고로 지으면 된다”는 주장까지 다양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지금, 제주시는 ‘건물 위치를 찾는’ 노력보다, ‘어서 빨리 짓자’는 쪽으로 행정력을 투입해 온 것 같다.
‘목관아가 일부 정비된 상태에서 망경루 터를 찾기 위해 발굴조사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현재 목관아 내부를 활용해 짓자’는 논리다. 잠정적인 망경루 건립지로 현재 목관아 귤림당 북쪽 공터를 점찍어 놓고, 내년도 예산반영을 정부와 타진 중이라고 한다. 정비예산은 48억여 원이다.

그러나 문화재는 뚝딱 짓는 ‘모델하우스’가 아니다. 대규모 아파트를 짓기 위한 모델하우스도 정해진 평수에 따라 건축설계를 거쳐 아름다운 집을 짓는다. 하물며 공적 비용을 들여서 짓는 문화재 건물을 건물 위치도, 건물 규모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문화재 정비’라는 명분만으로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건물짓기는 온당치 못한 일이다.

우리나라 문화재 정책도 문화재의 정비보다 있는 그대로 보존하자는 게 대세다. 과거에 상용했던 ‘원형 복원’이란 말은 지금 쓰길 꺼린다.
문화재 정비에 드는 막대한 비용보다도, 치적이나 보여주기 위해 문화재를 ‘날림’으로 정비해 선조들의 정신을 팔았다는 소리를 들을까 두렵다.

제주시 문화재 행정의 의욕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재 정비의 ‘날림’이 없도록 재고를 촉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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