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언제든지 돌아 가고 싶은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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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성장할 당시 그의 집안도 제주도의 여느 집처럼 늘 가난했다.

중산간에 위치했던 그의 집 근처에는 학교가 없어 초등학교, 중학교시절 왕복 8km이상되는 길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늘 걸어서 오가야 했다.

조천중 시절에는 핸드볼 선수로 활약할 만큼 활동적이고 지금도 동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집안이 어려워서 식구들 모두가 농사를 지어 생활했는데 저는 공부를 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일하기 싫어서 공부하는 척한 것 같기도 하지만 새벽 4시만 되면 항상 일어나는 습관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성공하고 돈을 벌려면 상고를 나와 은행원이 되는 것이었으나 육사에 들어가 군인이 되려고 인문계고인 오현고를 선택했고 차석으로 입학했다"고 말했다.

그는 "집안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내지 못하는 어려움은 없었다"며 "제주시내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부터 가정교사를 하며 학비를 벌었고 대학입학후에도 입주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대학 한 학기 등록금이 4만원이 채 되지 않았는데 아르바이트하면 한 달에 4만원을 받았다"며 "대학졸업 때까지 아르바이트 생활은 계속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고학으로 성장한 그는 매년 고향 후배들을 위해 제주대 출신 4-5명을 꼭 채용하고 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업의 희망을 잃지 말라고 개인적으로 오현고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기도 하다.

고향집에는 아직 부모님이 모두 살아 있고 7남매중 형과 누나 남녀동생 등 4남매가 있다.

그는 "매년 설과 추석때는 고향에 내려간다"며 "언제가 한 번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안 간적이 있는데 영 섭섭해 하는 눈치여서 그 뒤로는 항상 제주도에 간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을 떠난지 이제 40년이 되고 있지만 매년 고향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다"면서도 "조금만 더...라는 바램을 가져보는데 좀더 열린 생각 좀더 세계적인 시각으로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한국만의 제주도가 아니라 세계속의 제주도로 확고히 자리메김하고 전 세계인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열린 지역으로 발전했으면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또 "세상에 공짜는 없다. 심지어 우연히 찾아온 기회라 할지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은 준비된 사람들만의 몫이라는 사실"이라며 "생존과 장기적인 번영을 위해선 근면과 성실, 인내와 노력, 때로는 자기 희생도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처 강선옥씨(56) 역시 제주북교와 제주여고를 나온 제주시출신이고 제주에서 치과의사로 활동중인 부삼환씨가 큰동서, 금융감독원 송경철 부원장이 아래동서, 서울대의대 외래교수로 있는 강희중씨가 처남이다.

그와 부인 슬하에 쌍둥이 자매와 늦둥이 막내딸을 두고 있다.

<서울=강영진 기자>yjka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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