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양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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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모인 곳에서 혼자 피우는 것은 안된다.’
‘매화 앞에서도 안된다.’
‘몹시 덥고 가물 때도 안된다.’

19세기 문인 이옥(李鈺)이 저술한 담배전문서 ‘연경(烟經)’에 소개한 흡연을 금하는 조항인 ‘연기(烟忌)’의 내용이다.
최근 발견된 이 책에는 담배가 맛있을 때(연미.烟味)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궐의 섬돌 앞에서 임금님을 모시고 있는데 엄숙하고 위엄이 있다. 입을 다물고 오래 있다보니 입맛이 다 떨떠름하다. 대궐문을 벗어나자마자 담뱃갑을 찾아 서둘러 한 대 피우면 오장육부가 모두 향기롭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1618년 광해군 10년에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 당시에는 담뱃값과 은값이 같을 만큼 비쌌다고 한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타바코’란 외래어 음대로 담배를 ‘담바고’라 불렀다. 이 담배는 들어오자마자 사회적 지탄을 받는 요초(妖草)로 인식됐다.

인조 임금 때 대신 김상용(金尙蓉)이 담배에 대한 상소를 올려 금지해 줄 것을 요청하는 등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다.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금연운동이 일어난 것은 20세기 들어서이다.
고종 임금도 백성의 금연운동에 호응하여 ‘짐도 연초를 피우지 않겠다’는 칙령을 내렸다.

▲특히 외국산 담배에 대한 저항은 상당히 컸다. 1890년께 유행하기 시작한 ‘담바고 타령’이 조선8도에 불이 붙듯이 번졌다.
“담바고야, 담바고야, 동래 울산물에 올라 이 나라에 건너온 담바고야. 너는 어이 사시사철 따슨 땅을 버리고 이 나라에 왔느냐. 돈을 뿌리려 왔느냐, 돈을 훑으러 왔느냐. 어이구 어이구 이 담바고야.”

이 무렵 일본에서 서양 양담배 원료를 수입해다가 종이에 말아 피우게 하는 궐련을 만들어 우리나라에 무진장 팔아먹었기 때문이다. 개화기 담바고 망국론은 이 때 생겨난 것이다.

▲22일자 제주일보 3면에는 금강산휴양소에서 양담배를 파는 한복 입은 북한여성들의 모습이 실렸다.
8차 이산가족상봉단 공동오찬이 열린 김정숙휴양소에 간이 담배매장이 생겨났는데 그 품목을 보니 던힐(DunHill) 등 양담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일전에 어느 사회학자가 말하길 경제 개방의 첫 단추는 양담배에서 시작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북한에도 적용되는 것일까.
양담배는 경제 이상의 감정적 플러스 알파가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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