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475세대의 변명
금요칼럼- 475세대의 변명
  • 고원정
  • 승인 200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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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세등등한 386세대가 한창 떠오를 무렵, 조금은 자조적인 느낌으로 이른바 475세대임을 주장하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필자처럼 1950년대에 태어나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닌 40대들이었다.

어느 세대나 다들 그렇긴 하겠지만 우리들은 유난히 불운하고 무력한 마이너 그룹이라는 자괴감을 가지고 있다. 속된 말로 ‘왕따’ 당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있다. 우선 정치판을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4.19세대’, ‘6.3세대’를 지나면 그대로 ‘386세대’를 거론하지 아무도 ‘475세대’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한때 몇몇 의원들이 별도의 모임을 가지네 마네 하는 소리들이 있었지만 우리 또래의 정치인들은 그 수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한 번도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어본 일이 없다. 일반 기업으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고생이야 많이 했다지만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기에 입사한 덕분에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선배들이나, 온갖 디지털문화에 익숙한 젊은 후배들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구석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 우리들 세대의 초상이다. 심지어는 문단이나 예술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전의 선배작가들은 40대에 이미 거장 소리를 들어가면서 각 분야의 주축을 형성했다.

또 후배들은 발랄한 감수성을 자랑하며 마치 외계인처럼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475세대들은 이렇다 할 평가도 인기도 얻지 못한 채 어느새 희어버린 머리처럼 거북하기만한 중견소리를 듣기 시작하고 있는 형편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우선 475세대들이 커다란 역사적 체험을 공유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고 싶다.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들은 일제강점기와 6.25를 체험한 사람들이다. 4.19세대는 4.19혁명을 겪은 체험이 존재한다. 6.3세대는 4.19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세계적인 ‘스튜던트 파워’의 시대를 함께 통과한 경험이 있다. 386세대에게는 1980년 ‘서울의 봄’에서부터 1987년 ‘6월 항쟁’까지 이어지는 격동의 1980년대를 민주화투쟁으로 일관해 온 동지의식이 있다. 1950년대에 태어난 475세대들은 바로 그런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들이 다른 세대들보다 덜 투쟁적이고 덜 민주적이기 때문에? 1950년대생들이 걸어온 길이 상대적으로 평이하고 순탄했던 것만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고비와 역사적 고비가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4.19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아직 코흘리개이거나 초등학교 저학년에 지나지 않았다.

격동의 1980년대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이미 사회초년병이거나 복학생, 혹은 늦은 현역군인의 신분이었다. 475세대의 피끓는 청춘시절은 바로 그 중간지점, 유신시대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5.16을 전후해서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중.고등학교 시절 3선 개헌과 10월 유신을 겪었으며 대학시절은 이른바 긴급조치 시대였다.

물론 당시라고 해서 학생들의 저항이 없었을까만, 그 규모나 열기는 선배들이나 후배들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투옥되고 분신하는 학생들이 있었다지만 아직은 ‘운동권’이란 말조차 등장하지 않았고, 훗날 386세대들의 교과서가 되는 이념서적들은 팸플릿 형태로 지하에서 유통되고 있을 뿐이었다.

긴머리를 경찰관의 가위에 잘리고, 정치적 발언은 입에 올리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생맥주집에서 ‘고래사냥’이나 ‘한 잔의 추억’이니 하는 방송 금지곡들을 목이 터져라 부르며 울분을 삭였을 뿐이다. 그렇게 안으로만 타들어갔던 것이 우리들의 청춘이었다.

그런 시대적 불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몰아친 디지털 혁명 또한 그 주역은 보다 젊은 세대들의 몫일 수밖에 없었으니…. 이렇게 또래들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역사체험의 결핍이 결국 475세대들을 저마다 홀로인 모래알 같은 존재로, 정치적으로는 ‘침묵하는 다수’로 만들어버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강변하고 싶다. 그렇게 세월을 견뎌온 475세대야말로 이제 우리 사회의 허리가 아니겠는가. 얼마전 퇴직한 내 친구는 이제는 ‘인생 2모작 시대’라는 말을 전해왔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이야말로 지금 실의에 빠져 있는 475세대들의 새로운 공감대가 되어야 한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40대들이 살아야 사회가 살고 나라가 산다. 우리, 그동안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