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측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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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은 오른쪽 길을, 그리고 사람들은 왼쪽 길을 이용해야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선생님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통행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사람도 오른쪽 길이다.

정부는 지난 1일부터 공항, 철도역, 지하철역 등 다중이용 교통시설과 공공기관에 한해 우측보행을 시범 실시하고 있다. 이어 병원이나 백화점 등 민간건물의 에스컬레이터와 보행안내표지 등도 개선토록 유도하고 내년 7월부터 우측보행을 본격 시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른바 우측보행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 몸에 밴 보행관습의 혁명적 변화라 할 만하다.

▲좌측통행이 국내에 도입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21년부터다.

원래 우리나라는 1905년 최초의 근대적 규정인 ‘대한제국 규정’에 보행자와 차마의 우측통행을 원칙으로 정했다. 하지만 그 후 15년 이상 흐른 뒤 조선총독부는 당시 일본 기준에 따른다며 사람과 차량 모두 좌측통행을 강제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미군정청은 차량에 한해 우측통행으로 되돌렸다. 그러나 사람이 걷는 방법까지 강제할 수 없다며 좌측보행을 그대로 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좌측보행은 국민 10명 가운데 8명이 오른손잡이인 신체 특성이나 교통안전, 국제관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결국 보행방식을 바꾸는데 무려 88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국토해양부는 보행문화가 우측통행으로 전환되면 교통사고가 20% 정도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우측보행으로 차량과 마주 보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가 70여 명 감소하고 부상자도 1700여 명 정도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인적 피해비용과 심리적 피해비용이 각각 700여 억 원씩 줄고 눈동자 움직임의 15%, 정신부하의 13%, 심장박동수의 18% 가량 감소한다는 것이다.

연구결과가 놀랍기 그지없다. 누군가 얘기했던가, 이 정도라면 좌측보행은 가히 범죄수준이라고 말이다. 정부가 유독 오른쪽만을 좋아할만 하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잘 걷던 길이다. 그런데 갑자기 방향을 의식해야 한다. 국민편의를 위한 것이지만 한동안 보행 혼란이 불가피할 것 같다.

그럼에도 더 가슴에 다가오는 것은 “그나마 우리 머릿속에 있던 좌측통행의 ‘좌’마저 사라지게 생겼다”는 어느 소설가의 읊조림이다.<김범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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