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유도시 언어 경쟁력-홍콩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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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비지니스 수단일 뿐"
주민 대다수 중국 방언 광동어 사용
국가 요소요소 인력 영어 사용 유창
'아시아의 세계 도시' 재도약
범정부 캠페인 활발히 전개
모국어인 광동어 사용해도
생활에 불편함 전혀 없어
고교 졸업생 18%만 대학 진학
나머지는 영어 구사력 떨어져


올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싱가포르와 함께 최대 위기를 겪었던 홍콩.
지난 봄부터 해외 관광객 방문이 뚝 끊기면서 경제 전반에 걸쳐 극심한 침체를 겪었던 홍콩이 여름부터 관광객들이 늘고 무역도 활발해지면서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정부는 ‘아시아의 세계 도시’ 홍콩의 재도약을 위해 ‘Hong Kong-Live it, Love it(활기찬 표정과 열정이 넘치는 곳-홍콩)’ 캠페인을 성대한 행사와 함께 전개 중이다. 반드시 가보고 싶고, 다시 가보고 싶은, 더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은 홍콩이란 인식을 심어주고자 한다.

그래서인지 홍콩 섬에서 가장 높은 산, 용의 등과 같이 생긴 허리에 위치한 빅토리아 피크 전망대에서 바라본 홍콩은 한마디로 역동성 그 자체였다.
홍콩 섬과 주룽반도를 잇는 스타페리는 쉴 틈 없이 승객들을 실어 나르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도심 고층 건물에서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절묘한 조화마저 느껴졌다.

이를 보기 위해 산 아래 피크트램(케이블 전차)을 타고 전망대에 오르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홍콩 웰컴스 유(Hong Kong welcomes you)”라며 취재팀을 반긴 40대의 관광가이드 로이씨. 영어로 짧게 끊으며 홍콩을 자랑하는 로이씨의 발음은 미국식도 아니었고 영국식도 아니었다. 시제(時制)도 없고 복수형도 엉망이었다.

이른바 홍콩식 영어였으나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재홍콩일본상공회의소 사무국장인 히로시 마쓰이씨는 “기업 비즈니스도 그렇고 홍콩에서의 삶 자체를 영어로 소통하는 데 전혀 불편이 없다”고 말했다.

홍콩 관광청 총경리인 보니 여사는 “직원들의 영어 수준은 우수하다”면서 공무원들의 영어 실력이 홍콩의 경쟁력을 이끈다고 자랑했다.
저녁 때 홍콩 거리로 나섰다.

국제자유도시답게 영어와 중국어로 병기된 간판이 무수히 내걸려 있었다.
그러나 거리에 쏟아지는 인파 속은 시끄러울 정도로 중국어 일색이었다.
간혹 영어가 들려 쳐다보면 영어권 사람들이거나 영어권이 끼어 있는 경우였다.

택시를 탔다. 정확히 열 번을 이용했는데,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택시 운전사는 단 1명뿐이었다. 50대 후반으로 보인 그 운전사는 영어가 필요한 통신회사를 정년퇴임한 뒤 2년째 운전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20, 30대로 보인 9명의 운전사들은 수첩에 한자어로 행선지를 쓰고 보여줘야 ‘OK’ 했다.
음식 천국을 자랑하는 홍콩의 대중식당도 마찬가지.
수십개의 원탁에 둘러앉아 광둥 요리를 먹는 주민들의 대화 역시 온통 광둥어였다.

물론 요리 안내책자에는 한자어와 함께 영어가 쓰여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영어로 음식을 주문하면 일반 종업원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수분 정도 있다가 지배인이 나타나 정중하게 영어로 인사를 했다.

홍콩시립대학 영어과 찬 교수의 진단.
“과거 정부는 엘리트 위주의 대학 교육을 실시했다. 고교 졸업생의 2%만이 대학에 진학했다. 이들은 영어 사용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영어 구사력이 뒤떨어졌다. 이들 2%는 정부 관공서나 대기업에 취업해 외국인들과의 비즈니스를 이끌었다. 지금은 대학도 종전 2개교에서 8개교로 늘어나면서 고교 졸업생의 18% 정도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이들은 졸업 후 국가 기관 요소 요소에 취직,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오늘의 홍콩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80% 이상은 도태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광둥어를 사용해도 직장 생활이나 문화 활동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홍콩에서 영어는 비즈니스에 필요한 수단일 뿐이지,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민들은 “홍콩에서 영어를 하지 못하면 기본적으로 소득이 높은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 자신이 사회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학부모들은 유치원에서부터의 영어 학습이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게 하는, 더 좋은 직장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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