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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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기아의 노장 이종범 선수를 '바람의 아들'이라 부른다.

그에게 이런 수식어가 붙는 건 발군의 주루능력 때문이다. 실제 그는 그라운드에서 빠른 발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대도(大盜)'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1993년 해태(현 KIA)에 입단한 이종범은 그 해 무려 73개의 도루를 기록한데 이어 이듬해에는 역대 한 시즌 최다도루인 84도루를 성공시켰다.

이는 아직도 깨어지지 않고 있는 대기록이다.

당시 그가 그토록 많은 도루를 기록한 이유 중에 하나는 상대 포수들이 많은 경우에 도루 저지를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그의 발이 바람처럼 빨라서다.

그런 그가 올 시즌엔 역대 최소경기 통산 500도루, 1000득점을 동시에 달성하며 그의 닉네임에 찬란한 마침표를 찍었다.

▲제주 출신 프로골퍼 양용은도 '바람의 아들'로 불린다. 하지만 그에게 붙여진 '바람'의 뉘앙스는 야구 이종범과는 사뭇 다르다. 이종범의 바람이 속도 개념이라면, 양용은은 어떤 태생적인 의미를 느끼게 한다.

그가 나고 자란 고향, 제주는 '바람의 섬'이다. 바람은 여러 가지 모습이다. 때론 부드럽고, 때론 거칠고 사납기도 하다.

바람은 섬사람들에겐 운명이자, 팍팍한 삶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 바람에 순응해야 했고, 때론 맞서 극복해야 했다. 늦깎이 골프에 입문한 양용은은 변화무쌍한 바람의 속성을 간파하며 실력을 키웠다. 바람 앞에서 그는 겸손할 줄 알았고, 때론 흔들리지 않으며 두려움을 모르는 도전정신을 배웠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 시에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86세를 일기로 작고한 그가 일제 강점기였던 스물세 살에 이 시를 쓰면서, 자신의 슬픈 삶과 젊은 날의 방황. 번뇌를 '바람'으로 표현한 듯 하다.

기성세대들 중에는 '바람'이라는 시어가 주는 의미에 가슴 두근거리며 공감했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 운명 같은 '바람' 앞에 때론 꺾이고 좌절도 하지만, 결국 '바람'은 한 인간을 키운 자양분이기도 하다.

프로골퍼 양용은에겐 ‘바람이 아들’ 외에도 '야생마' '호랑이 사냥꾼' 등 별칭이 있다.

그는 최근 본지 이메일 인터뷰에서 '바람의 아들'이란 닉네임이 좋다고 했다.

그가 우리나라 골프역사를 새로 쓰며 세계적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서정주의 시처럼 8할이 바람 때문인지 모른다.<오택진 편집부장>ohtj@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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