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병장수의 꿈-제주지역 장수노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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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환경에 순응해야 장수한다"

무병장수의 꿈. 인간이라면 누구나 희구하는 가장 큰 소망 중 하나다.
일반인들은 장수하는 이들은 무척 특별한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먹는 것도 특별하고 생활하는 것도 특별하고 성격도 특별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장수는 운명이 아니다. 유전적 요인보다는 개인의 생활양식과 주어진 환경을 얼마나 잘 소화해낼 수 있느냐가 장수의 비결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은 물론 각종 연구보고서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평균 수명이 80세라고 발표했고 지난해 말 기준 제주도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남자 1만5361명, 여자 3만2691명 등 4만8052명으로 제주도 전체 인구 55만831명의 8.72%를 차지했다.

오래 사는 것이 더는 특수한 경우가 아닌 보편적 추세가 되고 있는 가운데 85세 이상 노인 9명을 만나 어떻게 건강하게 사는지를 확인했다.

▲가리지 않고 식사 정해진 시각에 가족과 꼬박꼬박=2년 전까지 물질을 했다는 북제주군 구좌읍 하도리의 고이화 할머니(87)는 육류를 좋아한다. 고 할머니의 밥상에는 1주일에 2회 이상 고기 반찬이 올라온다. 특히 나물은 거의 매끼 식탁에 오른다.

취재 과정에 만난 9명의 노인들의 식단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가리는 음식 없이 쌀밥과 된장국, 야채(데친 나물류)를 중심으로 주 1~2회 정도의 육식. 그러나 이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하루 세 끼의 식사를 정해진 시각에 반드시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식사량이 과거보다 줄기는 했지만 활동량에 비례한 것인만큼 특별히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보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여전히 젊은 시절 못지않은 식사량을 보이는 이들도 있어 일방적인 소식(小食)보다는 개인에게 알맞은 식사습관이 중요함을 보여줬다.

또 이들 가운데 6명은 혼자만 식사하는 것이 아니라 늘 배우자 또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으며 2명은 지척에 가족이 거주하면서 수시로 이들의 식사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사실들을 종합할 때 장수하는 노인들의 식생활은 별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식단으로 일정량을 규칙적으로 가족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계속해서 움직여라=올해 105세인 강인홍 할머니(제주시 봉개동)와 이인생 할머니(96.서귀포시 예래동)는 틈만 나면 집 뒤에 있는 텃밭을 일군다. 노안이 있어 자주 안과진료를 받기는 하지만 양남규 할아버지(91.남원읍 신례리)도 여전히 동네를 호령하고 다닌다.

노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오응삼 할아버지(100.제주시 이도1동)를 제외하면 나머지 노인들은 규칙적으로 산책을 하거나 밭일을 나간다.
혼자 거주하는 오태익 할아버지(87.한림읍 명월리)도 3년 전부터 관절염을 앓고 있어 거동이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직접 장보기에 나서는 등 자식들의 봉양만을 기다리는 노인들은 없었다.

3년 전 물질을 그만둔 고이화 할머니는 올 여름에도 바다에 나가 천초 등을 건져올리는 등 여전히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줬다.
이는 운동이 장수를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주도와 생활환경이 비슷한 것으로 평가받는 일본 오키나와 지역에 장수 인구가 많은 이유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논과 밭에서 일을 하는 관행 때문이라고 한다.

제주지역에 85세 이상 노인들이 많은 것도 여전히 자립성과 근면성을 바탕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기 때문이라는 분석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심리적 환경도 중요하다=장수는 음식을 잘 먹고 왕성한 활동을 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앞서 잠시 언급한 바 있지만 가족들과의 원만한 관계 등 심리적 환경도 ‘건강 장수’의 핵심적 요소 중 하나다.

한경혜 교수(서울대 아동가족학과)는 “가족처럼 ‘중요한 타자(Significant Others)’와의 유대를 지속하고 사회적 관계망을 유지하는 것은 노년기에 중요한 사회.심리적 소속감을 제공해 준다”고 밝힌 바 있다.

양남규 할아버지의 경우 4대가 한 가정에서 지내며, 양남극 할아버지(99.서귀포시 호근동)도 부인과 큰아들 내외, 손자 등 7명의 가족이 함께 지낸다.
초고령 노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이들에게 가족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가족이 다른 지방에 거주하는 오태익 할아버지를 제외하면 혼자 살더라도 자녀 등이 인근에 거주하고 있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사람 좋아하고 활달하고=이 노인들의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스스로 활달한 편이라고 밝혔다.

마을 단위 모임에는 반드시 참석하고, 나이와 상관 없이 비교적 나이가 적은 노인들과도 친구처럼 지내는 경향이 확인됐다.
반드시 가족과 함께 살지 않더라도 마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등 건강한 대인관계를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사회적 관계 없이 누리는 장수의 가치는 반감될 수 없음이 당연한 일이고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도 취재 과정에 만난 노인들의 태도는 ‘건강 장수’의 핵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끊임없는 두뇌.신체활동=치매 없는 장수 노인들은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고 두뇌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었다.
양석조 할아버지(83.남원읍 신례리)는 하루도 붓을 놓지 않는다. 18년 전 후두암 방사선 치료를 받았던 것이 병치레의 전부라고 밝힌 양 할아버지는 책이며 신문도 꼼꼼히 챙겨본다.

양남규 할아버지는 자신의 결혼기념일을 또렷하게 기억했고 자녀의 생일, 집안의 제삿날도 직접 챙긴다. 화투를 치는 일도 양 할아버지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과 중에 하나다.

김영신 할머니(91.안덕면 사계리)는 집안에서 소일을 하다 심심하면 노인정에 나가 다른 할머니들과 끊임없이 담소를 나눈다. 하루 한두 시간씩의 텔레비전 시청도 빼놓지 않는다.

이인생 할머니는 직접 전화를 할 줄도 알고 대중가요 몇 곡쯤은 거뜬히 부른다.
이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놀이를 하면서 말하고 듣는 등의 정신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인지력이 높을수록 사교성도 높을 가능성이 크지만 일상적인 대인관계가 의도적인 지적훈련 못지않게 인지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미국 미시간대와 덴버대의 연구 결과를 뒷받침하는 부분이다.

▲스스로 얘기하는 장수비결=음식을 가리지 않는 식습관과 절제된 생활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일부는 여전히 술과 담배를 즐겼지만 짧게는 10여 년 전부터 양을 줄여 갔다.

또 이들의 일상은 매우 단순했지만 규칙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취침과 기상, 식사 시각은 거의 일정하다고 말했다.
젊었을 때의 건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점을 꼽는 이들도 많았다.

양남규.오태익 할아버지나 고이화 할머니 등은 젊은 시절 자신들을 따라올 만큼 체력이 좋거나 일을 많이 했던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늘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대답도 적지 않아 원만한 대인관계와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심리적 안정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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