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린고비와 원장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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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내가 어릴적 자란 지방 소읍에 철물점을 경영해 알부자로 소문난 박모씨가 살고 있었다. 그는 젊어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하고 돈 때문에 서러움을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그는 삼 시 세 끼를 죽으로 때우고 반찬도 세 가지를 넘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의 아내는 그의 지독한 구두쇠 근성에 질린 나머지 어느 날 푼푼이 모아 두었던 돈을 챙겨 들고 아들과 함께 집을 나가버렸다. 삼 년여를 혼자 지내던 그는 어느 날 친지의
소개로 T시 출신 젊은 여성과 살림을 차리게 됐다. 그녀는 박씨와 살면서 수많은 돈을 빼돌려 고향 친정어머니 명의로 과수원을 엄청 사들였고 종업원 남자와 배가 맞아 집을 나가더니 얼마 후 돌아와서는 이혼을 하고 전 남편 가게의 비스듬한 맞은편에 역시 철물점을 차렸다.…그런데 어느 날 본처와 서울 근교에 사는 의사인 아들이 그를 모시겠다면서 찾아왔다. 가게를 친지에게 잠시 맡기고 아들을 따라 나선 그는 아들집에서 감금당한 채 병원을 차려주고 재산의 반을 내놓으라는 아들에게 폭행을 당하는데 이웃이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가까스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1년 뒤 겨울 그 의사인 외아들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는다. 그 후 그는 수 년이 흐른 뒤 4남매를 낳고 헤어진 이혼녀와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상당히 불운한 여성이었다. 전 남편은 서울 출신의 중학교 미술 선생이었는데 서울에 본처를 두고 총각이라 속이고 그녀와 결혼을 했다. 그녀는 시골 지주의 막내딸로 친정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집안 출신이었다. 그녀는 속아서 결혼했다는 배신감과 비탄에 빠져 살림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더니 결국 이혼하고 미장원을 경영하며 혼자 살고 있었다.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했던 박씨와의 결혼 조건은 죽을 때까지 돌봐주고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을 그녀가 소유하는 것이었다. 변두리 양지바른 산기슭 마을에 삼간 집을 마련하여 간호원인 그녀의 딸과 아들이 정성스레 그를 돌보았는데 수 년 뒤 편안히 세상을 떠났고 그녀 역시 그가 떠난 7년 후 그를 뒤따랐다.
…박씨와 함께 장사를 다니던 정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집을 맴돌며 갖은 구박을 받다가 10대 때부터 장터를 떠돌며 남의 가게 심부름부터 온갖 궂은 일 다하며 돈을 모았다. 그의 평생 소원은 부모 잃고 떠도는 부랑아(浮浪兒)들을 모아다가 가족처럼 돌보며 그들에게 기초교육을 시켜주고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해방 후 그는 그간 모았던 돈으로 약간의 논과 밭을 장만하고 손수 흙벽돌을 찍어 아이들과 같이 생활할 숙소를 지었다. 그리고 숙소 곁에 토끼와 닭, 염소와 송아지 한 마리를 키울 수 있는 축사도 마련했다. 또한 이곳 이름을 ‘애향애육원’이라 했다. 그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가축들을 살피고 낮에는 논을 돌보고 밭을 경작하며 밤 12시 이전에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다.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읍내 시장이나 인근 도시를 돌며 떠돌아다니는 부랑아들을 데려와서 학교에 보내고 기술을 가르쳤다. 그리고 매일 밤 취침 전에 애육원 식구 모두가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 오늘 하루 고통받지 않고 보람 있게 살게 하여 주심에 감사드린다고…. 그리고 그는 이웃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불운을 보면 원생들과 함께 발 벗고 나서 도왔다. 한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간 그. 그가 떠난 그 무덥던 여름 날 밤은 천둥 번개가 유난히 요란했고 비도 엄청 쏟아져 내렸다. 선(善)하기만 하며 그가 그저 자신의 불우함을 탓하지 않고 베풀기만 하고 이승을 떠난 것을 슬퍼해서였을까…. 화창했던 그의 장례식 날에는 읍의 기관장은 물론이요 도지사까지 참석했는데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온 동네가 울음바다였다.
예수는 말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우리는 모두 그리하고 있는가. 제발 서로 헐뜯지 않고라도 사는 이웃들,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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