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上海)의 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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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중국 난징(南京)에서 한.중.일 학자 9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한국국제통상학회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이번 통상학회의 주요 토론 의제는 장래에 한.중.일이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였다. 미래에 한.중.일이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필요성이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통상학회가 끝나 난징 유적지를 견학한 후 쑤저우(蘇州)지방으로 이동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쑤저우 실크(silk)공장을 시찰할 기회를 가졌다. 이곳에서 하나의 비단옷이 나오기까지 이러한 생산과정을 거쳐야 하는구나 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쑤저우의 명산물인 실크 패션쇼도 선을 보였다. 중국의 실크로드는 쑤저우에서 출발해 항저우(杭州)를 거쳐 전국으로 확대되고 세계로 뻗어 나갔다는 얘기다.
쑤저우 산업시찰을 끝내고 상하이(上海)로 들어가서 산업시찰을 하게 되었는데 이 거대한 도시 상하이에 주목하고자 한다.
상하이의 발전상황에 참가한 많은 학자들이 하나같이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도시 자체가 계획적으로 잘 정비돼 있고 고풍스러우면서 예술적인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신개발지로 알려진 푸둥지구(浦東地區)는 세계인들이 비즈니스하기에 가장 매력있는 장소로 잘 꾸며졌고 세계 굴지의 회사들이 이곳에 대거 입주하고 있음도 볼 수 있었다. 상하이가 자랑하는 동방명주(東方明珠)타워에 올라가니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이 이미 서울을 압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실로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이와 같은 상하이의 약진상에는 그만한 역사적인 배경이 있음을 알게 된다. 상하이는 1267년 송나라 말기부터 무역항으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중국 상인들은 비단, 도자기, 보석, 중국차, 기타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했고, 동아시아 상인들도 상하이로 들어와 상거래를 했다. 나아가 유럽의 영국만 하더라도 1600년 인도에 영국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인도와 중국 무역을 독점했다. 영국은 1832년까지 중국 무역의 독점권을 갖고 상하이를 중심으로 동방무역을 진행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상하이에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과 본격적으로 무역이 확대된 배경을 보면, 1840~1842년 영국과 청국 사이에 아편전쟁(阿片戰爭)이 일어났는데 이 전쟁이 사실상 영국의 승리로 끝남으로써 1842년 8월 난징조약(南京條約)이 체결돼 상하이가 정식으로 개항하기에 이르고 이 조약 체결을 기점으로 영국의 정치인.상인 등이 상하이로 물밀 듯이 들어와 입주하면서 상하이는 동.서양의 접선 지역으로 일찍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장소가 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배경을 보면 상하이가 대단히 유서 깊은 장소임을 알게 된다.
현대의 상하이는 중국 굴지의 공업도시로 기계, 조선, 전기, 화학, 비료, 방직, 인쇄, 관광, 정보통신산업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들이 미래에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인프라도 완비돼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제주도가 거리적으로 상하이와 인접해 있다는 사실이다. 제주도가 미래에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고 있고 그것에 따른 국제금융센터, 국제무역센터, 국제물류센터, 국제관광지역, 정보통신산업을 육성하고자 한다면, 상하이도 이러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제주도가 앞으로 이러한 분야와 관련해 상하이와 치열한 경쟁관계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어떤 의미에서는 위협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느낌도 드는데 우리는 이와 관련, 미래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 특히 상하이에 대한 심도 있는 관찰과 폭넓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사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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