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저지와(井底之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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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漢)나라 건국 시 무장으로서 혁혁한 공을 세운 한신은 한이 천하를 통일한 후 모반을 도모했다 하여 한 고조 유방에게 죽음을 당했다. 죽기 직전 한신은 ‘교토사, 주구팽(狡兎死, 走狗烹)’이라는 유명한 문구를 남겼는데 그 말을 한 다음 그는 “괴통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을…”이라며 후회했다. 괴통은 제(齊)나라의 언변가로서 유방이 아직 항우와 천하제패를 다투고 있을 때, 한신을 찾아가서 스스로 독립할 것을 권유한 적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유방이 괴통을 체포하라고 명했다.
이윽고 붙잡혀 온 괴통에게 유방이 물었다. “네 놈은 한신에게 반역할 것을 권유했겠다!” “예. 하오나 그는 제 계책에 따르지 않았나이다. 그래서 그처럼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그 계책을 썼더라면 폐하께서도 이처럼 손쉽게 천하를 얻으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괴통이 너무나 태연하게 대답했으므로 유방이 크게 노했다. “이 놈을 당장 삶아 죽이도록 하라!” “폐하. 그것은 무신(無辛)의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에게 죽어야 할 이유는 한가지도 없사옵니다.” “너는 한신에게 모반을 권유한즉 그것은 중죄(重罪)니라!” “아니옵니다, 폐하. 신의 말을 들어주소서. 당시 천하는 난마(亂麻)처럼 뒤엉켜 있었으며 영웅호걸이 각지에서 일어났나이다. 그런 와중에서 폐하가 제일 뛰어나셨기에 천하는 폐하의 손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 점이 중요하나이다. 저 악독한 도척(盜拓)이 기르는 개가 성군(聖君)이신 요왕을 보고 짖었다 해도 요왕이 나빴기 때문이 아니옵니다. 개란 것은 주인 외의 사람을 보면 짖게 마련이옵지요. 당시 신으로서는 한신 장군밖에 없었고, 폐하의 일은 염두에 없었기 때문에 한신쪽에 서서 폐하께 짖었을 뿐입니다. 천하가 문란해지면 이를 통일하고 제위(帝位)에 오르려는 자가 많이 있게 마련입니다. 폐하께서도 그런 사람 중 한 분이시옵니다. 다른 사람들은 역부족이어서 실현하지 못했을 뿐이나이다. 하온데 천하가 평정된 오늘날 천하를 노렸다고 해서 그 이유로 모두 삶아 죽이실 작정이십니까?” 유방은 괴통을 용서해 주었다. ‘사기(史記)’에 있는 이야기이다.
경쟁회사를 흡수 합병할 경우 그 회사의 사원으로서 이쪽 회사를 괴롭혔던 자를 내쫓고 이쪽 회사에 내통했던 자를 중용해야 할까? 그리고 정계에서 자신의 이익을 좇아 철새처럼 당을 옮겨 다니거나 도덕성에 문제 있는 인사에게 국가의 살림을 맡길 수 있을까? 자사(自社)나 자당(自黨)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야말로 지보(至寶)적인 존재인 것이다.
근간 총리서리로 임명된 장상씨의 행적에 대한 도덕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속칭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인물, 더구나 대학 총장 출신이 도덕성 문제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으니 안쓰럽다. 그러나 한국의 주인인 4700만 국민의 실제 살림을 꾸려 나갈 총리로서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면 총리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고 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아들이 미국 국적을 가진 외국인임에도 지금껏 주민등록에 올라 있고 1979년 부친인 박준서 연세대 교수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왔다 한다. 1977년 4세때 귀국과 함께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서 호적등본이 말소됐지만, 박 교수는 1978년 발급된 아들의 주민등록은 말소하지 않았고 의무교육 혜택까지 받게 했다는 것이다. 한국 지도층의 가장 큰 문제점은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높은 신분에는 도의상 의무가 따른다)에 관한 의식 결핍이 아닌가 한다. 외국 국적을 지니고 병역도 치르지 않은 자식을 두고 어떻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누릴 혜택은 다 누릴 배짱이 있었을까. 역시 대학에 몸담고 있는 같은 학자로서 부끄럽기만 하다. 우리는 현 지도층 인사 가운데 상당수가 당사자와 자식의 병역에 문제가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지도층이 솔선 수범하지 않고 존경받을 만한 처신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네들의 말을 믿고 따를까. 정말 개가 웃을 일이다. 지난번 서해교전에서는 북한군의 고의적인 불시기습으로 아군 병사들에게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북한 정부의 공식 사과도 아닌 김모의 유감 표명을 우리 정부는 사과 표명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해 허겁지겁 수용하고 있다. 아마도 북한측이 그네들에게 지원할 쌀을 가축 사료로 전용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그리 국내에서는 정저지와(井底之蛙.우물안 개구리)처럼 큰 소리 탕탕 치면서도 대외 문제 처리는 당당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며 졸렬한지 모르겠다. 김해에 추락한 중국민항의 피해자 유족에 대한 배상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왜 정부와 중앙의 매스컴은 침묵하고 있는가. 진정 우리는 국민의 입장에 서서 괴통처럼 초지일관 배신하지 않고 국민을 사랑하며 도덕성에 하자 없고 식언하지 않는 훌륭한 지도층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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