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승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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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믿어지지 않을 만큼 대단한 열광이며 환희였다. 축구 변방지역인 아시아국가로는 처음으로 유럽의 축구 강국 팀을 이겨가면서 준결승까지 거침없이 진출했다. 이 과정에 사상 최대 인파인 연인원 2000만명 이상이 거리 응원에 나서 한국대표팀의 선전을 응원하였다. 또한 ‘히딩크 효과’라고 불릴 만큼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한 네델란드 출신 축구팀 감독에 대한 대중적 인기, 대표팀 서포터스로 나선 ‘붉은 악마’의 선도 아래 레드 선풍을
일으킴으로써 마치 ‘레드 콤플렉스’가 사라진 것 같은 시각적 효과가 일어난 붉은 물결, 수백만 명이 모였음에도 큰 불상사 없이 조그만 휴지도 치우고 정리한 놀라운 질서의식,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을 보고 거리로 집결해 단체응원을 한 사이버 문화의 위력, 단군이래 가장 많은 여성들이 붉은 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서 문화축제에 참여한 여성들의 엄청난 관심과 참여, 이 모두가 ‘6월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번 월드컵이 만든 ‘기적’의 현상들이다.
무엇이 이런 엄청난 활력을 가져오게 만들 것일까? 그동안 권위주의 정치 체제하에서 금지와 억압, 일상적 답답함으로 위축되어 왔던 대중적 잠재력이 이번의 축구팀 선전이라는 계기를 만나 폭발하듯이 터져 나온 것이다. 특히 제주 출신 최진철 선수가 보인 강인한 체력과 투혼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본선 전경기와 8강, 4강전에 모두 출전한 세 선수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월드컵기간 무려 9시간 이상을 뛰었다. 신장 187㎝인 그가 평균신장 185㎝인 독일팀 선수들과 박진감이 넘치는 경기를 하다가 부상당한 점은 안타깝기만 하다. 이들의 기초체력 강화를 강조한 용병 감독의 기본 역량 중시 정책이 주효했던 것이다. 기본을 갖춘다는 점은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부문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쨌든 이만큼 우리 사회가 역동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안정, 민주주의의 신장과 권리의식의 고취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문제는 대중의식과 문화감각의 이런 성장에 비견할 만큼 정치나 경제, 교육부문 등이 따라 잡지 못할 만큼 뒤진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데서 오는 문화적 지체를 앞으로 어떻게 메울 것인가라는 점이다. 따라서 ‘히딩크 효과’만을 살펴볼 게 아니라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합의에 참여하여 인내를 갖고 이견을 조정하려는 풍토가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고, 동시에 시장과 경쟁규율을 끊임없이 도입함으로써 자칫 발생하기 쉬운 이해당사자 간 담합과 부패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는 네델란드의 민주주의와 정치경제를 배울 필요가 있다.
세계 축구 4강 진출, 이번의 성과는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해외에서 전해져 오는 동포들의 뿌듯한 자부심, 해외 언론들의 과분할 만큼 호의적인 평가 등을 볼 때 한국 사회와 축구국가대표팀은 앞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 적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아시아의 자랑’이라는 카드섹션을 통해 나타낸 것처럼 아시아를 대표할 만큼의 실력과 비전을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당장 월드컵 열기를 차분하게 정리하고 이번 대회 개최 과정에서 나타난 국민적 열기를 안아담을 수 있는 통합프로그램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지역차별과 성별차, 연고주의와 빈부격차로 갈라진 우리 사회가 마치 하나로 뭉친 듯이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갈 수 있었던 것은 집단스포츠인 축구의 통합기능이 발휘된 결과이다. 외국인 감독이 떠나고 국민들의 관심이 멀어질 때 ‘제주경기장’(엄청난 예산을 들여 건설된 경기장을 왜 굳이 ‘서귀포경기장’으로 불러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관광지로서 잘 알려진 ‘제주’의 이름으로 불려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의 관리운영문제에 대한 대책 등 월드컵 이후 앞으로의 과제와 대책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이 경우 정부 주도의 관료주의와 국민동원에 대한 유혹은 국민적 열기를 냉각시키고 자발적 참여를 철회하게 만든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월드컵 기간 간과하거나 무시되어 왔던 인권과 평화, 특히 주민 불편과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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