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우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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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무주군 J면 두메 산골 마을이 고향인 A씨는 일제 말엽 사할린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사망한 아버지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 위로 누이가 둘이었으나 큰누이는 병약한 데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일곱 살 때 죽고 말았다.
두 살 터울이었으니 안씨가 세 살 때였다.

조상 대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이었던 그의 집안은 온 식구가 움직여야 겨우 호구(糊口)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찢어진 보자기에 책과 공책을 싸 가지고 다녔지만 똑똑했던 지라 반에서 일등이요 반장으로서 학급을 리드했다.
그의 반에는 지주인 김씨의 딸 형자와 이웃 마을 부자인 양조장(釀造場)집 아들 현준이가 있었다.

형자는 얼굴이 예쁘고 마음씨도 착했으나 현준은 공부는 제쳐놓고 말썽만 부리는 골칫덩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도박과 완력으로 돈을 모아 고리 대금으로 재산을 부풀렸는데 여러 집안을 도박에 끌어들여 망쳐놓았기에 인근 동네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했으며 읍내에는 소실까지 두고서 거들먹거리며 휘젓고 다녔다.

그가 졸업을 앞둔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즈음이었다.
때마침 내린 소나기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냇가의 물이 불어 징검다리로는 건널 수 없을 정도로 물살이 셌다.

그는 고무신을 벗어 들고 그녀를 등에 업고 건너다 신발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만다.
이튿날 맨발로 등교한 그, 학교가 파한 뒤 집에 돌아와 보니 그녀가 보내온 운동화 한 켤레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후 처음 신어 보는 운동화였다.
졸업 후 그녀와 현준은 읍내 중학교로 진학하고 그는 지게를 지고 산에서 나무를 하거나 꼴을 베고 남의 집 심부름을 하며 형자와 현준이 학교 가는 모습을 먼발치서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곤 했다.

이듬해 봄 어느 날 밤 그는 뻐꾸기 우는 뒷동산에 올라 아름드리 적송에다 눈물을 흘리며 주머니칼로 글씨를 새긴다.

“이기자”라고. 그리고는 어머니한테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편지 한 장을 써 놓고 서울로 떠난다.
서울에서 그는 막노동부터 해서 주경야독으로 야간대학까지 마치고 일본인 회사에 취직하여 고속 승진을 거듭한 끝에 일제가 패망하자 이 회사를 인수하여 사장이 되고 거금을 손에 쥐게 된다.

그는 고향에 돌아와서 ‘이기자 중학교’를 설립하고 현준과 결혼한 뒤 사별하고 혼자 사는 형자를 교장으로 앉힌다.

지난번 유럽 강호들을 차례로 꺾고 4강에 진출해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운 선수 중에는 A씨처럼 고난을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우뚝 선 선수들이 있다.

고교 시절 힘든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고향인 강릉에서 청량리행 열차에 무작정 몸을 싣고 목동 근처의 봉제공장에서 온종일 셔츠를 뒤집는 일을 했다는 설기현, 벨기에 프로리그에 진출했을 때 그의 소망은 어머니에게 아파트 한 채 마련해드리는 것이었다 한다.

홀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성장 환경을 딛고 일어서 이탈리아 축구구단에 진출하여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안정환.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나이트클럽 웨이터와 공사판을 전전한 이을용. 고교 시절 유흥업소 웨이터로 일한 적이 있는 김남일. 히딩크 부임 전까지 무명이었던 송종국. 자신보다 우리 한국을 앞세우고 칭기즈칸 군단처럼 몰아붙인 이들 선수에게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의 몸값이 수백억원이 넘는 세계적 스타들이 차례로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근간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이 검찰에 구속되었다 한다.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자식들이었다면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아버지는 어떡하라고 황당한 일들을 저지를 수 있을까?

박정희 대통령은 어떻게 친.인척 관리를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이 어떤 과오를 저질렀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는가. 역사는 거울이라 한다.
우리는 과연 수신제가(修身齊家)한 뒤 평천하(平天下)할 수 있는, 우리 선수들처럼 국민들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는 대통령이나 정치인을 만나기가 이렇게 정말 힘든 것인가.

뻐꾸기 속절없이 우는 밤에 우리 모두 심각히 반추해 볼 문제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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