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신화의 함정
히딩크 신화의 함정
  • 이경원
  • 승인 2002.07.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잔인한 6월이 갔다. 온 거리와 나라 전체를 붉게 물들인 주역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그들의 대부였던 벽안의 이방인도 돌아갔다. 그러나 거스 히딩크가 가져온 서구의 ‘합리적 판단과 전략’ 그리고 그 흔적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요즘 서점의 신간 코너를 장식하고 있는 ‘히딩크 CEO’, ‘히딩크의 힘’ 등과 같은 제목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역사상 대~한민국의 어느 정치인과 학자들도 전달하는 데 실패한 중요한 메시지를 짧은 기간 동안 전달하였다. 메시지의 내용은 한마디로 ‘파격’이다. 종래의 한국 축구, 아니 모든 사회에 통용되고 있던 질서를 내던진 것이다. 학연, 지연과 같은 연고주의를 내던지는 파격을 행했고, 그 파격은 승리로 결말이 났다.

그러나 6월의 신화 뒤에 드리워진 우리의 자화상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변화는 그렇게 쉽사리 올 듯 싶지 않다. 먼저 히딩크가 남긴 한 편의 드라마와 특히 그가 거둔 결실이 우리 사회의 변화된 모습의 결과라 생각하면 너무 성급한 결론일 것이다. 지난 6월의 함성이 우리의 소위 냄비 근성적 문화가 표출된 것이라면 기우인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새삼 떠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치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선진국이 된 듯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는 휘몰이 속에 우리는 잠시 선진국 행세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곤 머지않아 다시 우리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남이 우리를 보고 있으니 그 기간만이라도 잘 해보자는 과시적 구호는 이번에도 그 약효를 발휘한 것인가.

지난 성취가 엘리트 체육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대표팀 체제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는 대중들이 즐기는 스포츠로 전환하여야 한다. 어렵던 시절 형제들의 희생하에 ‘귀남이’에게만 온 정성을 쏟고 그의 출세를 온 집안의 경사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 자식은 집안의 대표주자로 교육과 투자의 모든 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대표팀과 그들에 대한 그 막대한 투자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내가 대표이고, 그 화려한 경기장의 잔디 구장을 누비는 주인공도 귀남이가 아닌 나와 우리들이고 싶다.
그리고 언제까지 제3자가 지적한 나의 모습에 문제의 심각성을 느낄 것인가. 우리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시금 제2, 제3의 히딩크를 불러와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전히 타율적 판단에 익숙한 국민이다. 아마도 역사상 스스로 무엇인가를 이룩해 본 적이 드물어 냉소주의적 정서가 배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국민들은 개개인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음을 말하곤 한다. 그럼에도 유독 이 사회에서는 그 실행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와 우리에 대한 자긍심과 신뢰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자신감을 언제까지 제3자에게 맡길 것인가. 히딩크가 떠난 지금 우리(축구)의 장래는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자기성찰과 해답은 우리의 몫이다. 해답만은 그와 함께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강력한 지도자도 중요하지만 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결국 우리 국민 스스로 현명해지고자 하는 노력이다. 국민 개개인이 일상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훈련하고 그 힘을 느껴야 할 것이다. 히딩크가 합리적인 생각에 바탕을 둔 실천을 하였고 그 결과 무엇인가를 이루어 냈다면 우리 역시 나가야 할 방향은 자명하다. 히딩크 역시 그의 판단을 실천에 옮기는 데 많은 저항과 비난을 받았다면 우리 역시 그러한 과정을 생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중이 깨어나야 한다. 비록 지도자가 원치 않을지라도. 히딩크는 신화일 뿐이다. 그가 잠시 몸담았던 공간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