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가 어려움을 만든다
말 한마디가 어려움을 만든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독일의 시인 ‘하이네’는 ‘말, 그것으로 인하여 죽은 이를 무덤에서 불러내고, 산자를 묻을 수도 있다. 말, 그것으로 인하여 소인을 거인으로 만들고, 거인을 철저하게 두드려 없앨 수도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말로 식상한 요즘에 와서 새삼스레 실감이 난다.
하긴 우리의 격언에도 ‘남아일언 중천금’이라 하여 말의 중요성을 밝혔다. 우리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크게 낭패를 당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1987년 제14대 대통령선거가 한창일 때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당선할 자신이 없었음인지 ‘대통령에 당선되면 88올림픽이 끝난 다음 중간평가를 하겠다’고 했다. 그 말은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을 앞두고 있음으로 ‘한번 시켜봐 달라.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재신임을 묻겠다’는 의미였다. 이를 공약으로 내놓은 것이다.
88올림픽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대통령의 인기가 생각처럼 올라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야당에서는 공약대로 중간평가를 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그런데 우리 헌법에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를 할 방법이 없다. 우리 헌법 제72조에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하여 국민투표의 요건이 정해졌다.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를 할 방법이 없다.
선거할 때는 다급하니 우선 국민들이 솔깃해 할 말을 해 놓긴 했으나 지킬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헌법에 없어서 못 하겠다’고도 할 수 없고 아주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의도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를 무마하느라 그 당시 야당과 대단한 거래를 했을 것이란 추측이 무성하기도 했다. 하지도 못할 말을 했다가 곤욕을 치른 것이다.
새천년민주당에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제16대 대통령후보를 국민이 참여한 가운데 전국 경선을 통하여 선출하면서 민주정치의 진일보한 면을 보여 국민으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그 당시 노무현 후보는 다급했음인지 ‘6.13지방선거에 영남 세 곳 광역단체장을 민주당에서 한 곳도 당선시키지 못하면 대통령후보로 선출되더라도 재신임을 묻겠다’고 선언했다. 선거 결과는 한 곳도 당선되지 않았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나니 재신임을 물어야 하는데 재신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우선 급한 대로 ‘ 8.8 재.보선 후에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러나 재신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재경선을 하려면 후보를 사퇴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고, 후보를 유지하면서 재신임을 묻는 것이라면 만에 하나 부결되면 그때 가서 새로 경선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이런 말을 안 했으면 아무일 없이 민주당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중심으로 선거체제에 임해야 할 것인데 공연히 실현도 못할 말을 해서 결과적으로 후보 교체론이나 신당론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말 한 마디는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실현할 수도 없는 말을 함부로 했다가 스스로 낭패를 당하는 경우다.
말, 그것으로 인하여 죽은 이를 무덤에서 불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산자를 묻으려는 것 같고, 소인을 거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인을 철저하게 두드려 없애려는 것 같다. 특히 정치권이 반성할 일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