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두껍고 속이 시커먼 후흑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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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후흑(厚黑)이라 함은 ‘두꺼운 얼굴과 시커먼 뱃속’을 말한다.
후흑학은 이종오(李宗吾)라는 사람이 내세운 학설이다. 그는 중국 역사의 여러 인물들을 예로 들면서 성공과 패배를 결정하는 것은 후흑의 논리라고 말한다. 즉 얼굴이 더 두껍고 뱃속이 더 시커먼 자가 승리를 했다는 것이다.
조조는 모든 사람이 알다시피 저울질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음흉하고 시커먼 속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쫓기는 몸이 되어 여백사의 집을 찾아갔을 때, 여백사는 가족들에게 돼지를 잡아 조조를 대접하라고 명하고 술을 사오기 위해 집을 나섰다. 조조는 돼지를 잡기 위해 칼을 가는 것을 보고 자신을 죽이려는 것으로 추측하고 가족을 살해하고 술을 사 가지고 들어오는 여백사도 살해해 버리고 만다. 이 때 동행하던 진궁이 “사정을 모르고 가족을 살해한 것은 이해하지만 사정을 알고서도 여백사를 살해한 것은 너무 지나친 일이 아니오”라고 힐책하자 조조는 “내가 남을 배신할지언정 나는 다른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유비의 특출난 점도 낯가죽이 두껍다는 데 있다. 그는 이리저리 쫓겨다니며 남의 처마 밑에 얹혀 살면서도 전혀 수치심을 갖지 않았고 애매한 태도로 줏대 없이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었고 울기도 잘 했다.
그는 여포를 믿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조조에게 붙고 다시 원소의 품에 투항하고 다시 뛰쳐나와 유표 밑에 가 있다가 끝내는 손권과 결탁하는 등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조금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행하였다.
산을 뽑아낼만큼 힘이 세고 기개가 천하를 뒤덮었던 항우가 홍문의 연회에서 칼을 뽑아 유방의 목을 내리치기만 했어도 천하는 항우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후세 사가들의 비난이 두려웠는지 망설이던 중 유방은 도망가고 말았다.
항우가 유방에게 패한 후 오강을 건너가 재기를 다짐했다면 천하가 누구의 수중에 들어갔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군사 8000명을 잃은 그는 면목이 없어 오강을 건너는 것을 포기했고 천하는 유방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반면 유방은 항우가 자신의 아버지를 인질로 잡아 삶아 죽이겠다고 위협했을 때도 태연하게 국 한 사발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했다. 초나라 병사에게 쫓기고 있을 때 수레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친자식을 세 번이나 마차에서 떠밀어 자신의 생명만을 보호하려 했다. 후에 천하가 모두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 공신인 한신과 팽월을 죽여 버렸으니 ‘새를 잡으면 활을 창고에 넣고,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 얼굴이 두껍고 시커먼 뱃속을 가진 후흑의 대가였다.
한신이 괴통으로부터 ‘유방에게서 독립하라’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한신은 “남의 도움으로 옷을 입은 자는 그 사람을 위해 걱정해야 하고, 남의 도움으로 먹고 사는 자는 그 사람을 위해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후에 그는 유방에게 장락궁 종루에서 참수당하고 삼족이 몰살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후흑을 장황하게 소개한 것은 작금의 정치가들의 생각과 행동을 보면, 마치 얼굴이 열자만큼 두껍고 속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시커먼 후흑의 전문가가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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